활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사랑했습니다
미워했기도 했고요
그런 감정들이 빗물에 씻겨가길 바랍니다
빗소리에 묻혀서 다신 들리지 않길 원합니다
비가 미치도록 퍼붓던 여름에 나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온통 축축하게 젖어버린 얼굴에서 눈물인지 빗물인지도 모를 정도로 하염없이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유난히 굵고 뜨겁던 빗줄기가 콘크리트 속으로 스며들던 그 장면은 나를 증명할 유일한 청춘으로 남아버렸다. 그렇게 내게서 피어오르던 연녹색의 향이 그날로 사라져 버렸다. 너무 오래 비를 맞아 지워져 버린 걸까?
아직 잊지 못해 기다립니다. 허망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오늘도 그때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시간에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당신을 찾습니다. 나의 여름을 가져가버린 당신이 미워서 여름을 빼앗긴 뒤로는 도저히 나지 않는 여름의 향 때문에, 뜨거운 이 계절이 괴롭습니다.
양철 지붕을 뜨겁게 달구는 태양의 향은 어떠했나요. 이젠 기억나지 않을 만큼 아득해는 향을 느끼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달아오르게 할 만큼 뜨거운 향이었나요. 아니면 비 온 뒤 말게 갠 것처럼 밝고 깨끗한 향이었나요. 문득 떠오르는 당신을 하늘에 그립니다.
여름 햇살에 반사된 물방울들이 내게로 내립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보석이 땅으로 아주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가네요. 여우비가 내리는 중엔 숨이 막혀옵니다. 뜨거운 여름과 습한 공기가 합쳐져 꼭 질식할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이런 여름을 왜 좋아했었나요.
당신의 기억 속에 잠식당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너울거리며 떠나버린 당신 덕분에 내가 괴롭습니다. 오후가 너끈하게 넘어가는 시간에, 그림자가 기울어 길어지던 순간을 알고 있나요.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뜨던 시간에 사라질 만큼 짧은 여름으로 변해버린 나의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