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시간

by 석현준

그대의 시간은 얼마에 살 수 있나요?
길고 긴 시간을 건너 당신은 나를 찾아온 것이겠죠



언젠가부터 나의 시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내게서 도망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미워졌는지 아주 오랜 기억 속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친 그 짧은 찰나엔 시간이 멈췄습니다. 얼굴도 모르던 낯선 두 사람 사이에서 기적이 피어 올라왔습니다. 내리던 비가 멈춰버렸고 달리던 자동차들은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덕분에 뒤돌아볼 틈 없이 빠르게 흘러가던 우리의 삶에는 작은 숨구멍이 생긴듯 했고요.

발동 조건은 지금에서는 쉬웠지만 그때의 나에겐 어려웠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고 그렇게 배웠기에 눈동자를 바라본다는 것이 괜스레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았었기에 내가 만든 두터운 성벽을 허물기까지도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우린 시간을 멈춘 후에 여러 가지 일을 했죠. 이를테면 은행을 털어보려고도 했지만 온통 열쇠와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곳을 털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도 마음껏 놀았습니다. 결코 움직이지 않는 청룡열차를 타고 물방울마저 굳어버린 후룸라이드 타고 행복해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행에서나 놀이공원이나 작은(그리 작았는지는 모를) 일탈을 즐겼습니다.

그러고는 한숨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일탈들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신은 공평하게 숨 쉴 구멍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많이 주진 않았고요 오늘을 살 수 있을 만큼만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은 25시간도 되었다, 38시간도 되며 들쭉날쭉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대로 흘러가는 시간에 피곤해 하며 잠에 들기 일쑤였으니까 말이죠.

여러 날이 지나고 우리가 만난 날들을 다 셀 수 없어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시간이 멈춘 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한 후에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시간의 시작은 어떠할까?' 우리가 시간을 멈추었던 때가 밤이었기에 어두웠고 내 눈앞에서 타오르다만 모닥불을 보다가 번득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옆에서 나와 함께 기다리던 당신은 체크무늬 담요를 덮고 잠에 들었고 나는 오기로 멈추어진 시간의 시작을 찾으려 했습니다. 며칠만 기다리면 신이라도 나타날 줄 알았던 난 신나게 하룻밤을 새웠습니다. 초췌해진 얼굴을 본 당신은 얼른 잠에 들라고 했지만 난 잠투정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늦장을 부리며 해가 떠오르든, 신이 내게 말을 걸든 간에 그것이 무엇이든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시간감각이 없어질 때쯤 당신은 이런 나를 더 이상 가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억지로 나의 흐리멍덩해진 눈을 마주쳤습니다. 당신의 눈동자를 보고 난 뒤 머릿속은 캄캄 해졌죠.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고 뒤늦게 들어온 의사 말로는 영양실조에 수면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틀 동안 잠만 자고 있었다고도 덧붙여 말했습니다. 간호는 누가 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나의 어리석고 어렸던 꿈은 끝났습니다. 그 후 몇 번이고 우린 서로의 눈을 마주쳤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시냇물들은 흘러가고 있었죠. 전보다는 아주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듯했습니다. 신이 선택한 최고의 결정이었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병실에 있을 동안 난 시간의 시작을 찾아냈습니다. 병실에서 무척이나 일찍 깨어버린 날 창문을 바라보다 바로 찾아버렸죠. 높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을 보면서. 내게는 새벽이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푸른 공기가 흐르는 새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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