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마, 꼭 내가 갈 때까지 살아있어"
너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렸지
넌 분명히 내게로 오겠지
어쩔 줄 모르는 네 얼굴이 눈에 선했지만..........
기억의 끝자락, 휴대폰에 적힌 네 번호를 찾았다.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 너의 간곡한 부탁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젠 사라지기로 결심했고 옥상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휴대폰을 초록빛 바닥에 아무렇게 던져두었지. 휴대폰의 화면은 거미줄처럼 깨져있었지만 이젠 내게 필요 없었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허공인 그곳에서 서있었다. 어쩌면 널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혼자 서있던 시간은 왜 이리도 길게 느껴졌는지. 이따금씩 불어오는 돌풍이 여러 번 지나가고 그때마다 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온몸의 균형을 맞추어야 했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죽음은 너무 허망해 보였기에 네가 올동안만 살아있기로 했다. 바람만큼이나 높았던 건물아래를 내려다보면 죽음이 한층 가까이 다가온듯했고 있지도 않던 고소공포증이 생긴 것 같았다.
죽음을 앞에 두니 여러 생각이 들었지. 어릴 때 내가 잘못했던 사소한 실수,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날들 그 생각들 속에 너도 들어있었어. 내가 널 사랑했을까? 만약 널 무엇보다 사랑했다면 나는 지금 이러고 있진 않았겠지. 널 두고 먼저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거야. 널 싫어하거나 혐오하지도 않아. 방금 전에 네게 전화했었잖아. 마지막에 보고 싶은 것도 너였고 듣고 싶었던 목소리도 너였으니까. 이전에 내가 수도 없이 말했고 표현했던 그 사랑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 조금 더 원초적으로 내가 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사랑을 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을 장악했다. 온통 '널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들이었지.
짧고도 긴 사색의 시간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로 막을 내렸고 나는 이제야 저 밑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널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었지. 네가 옥상까지 올라오기도 전에 난 저기 멀게 보이던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온몸으로 바람을 거스르며 사라졌다.
인간이 신이 되고자 했던 허황된 죽음이었지. 난 내 불안, 우울함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꿈꾸었던 세상은 이런 척박한 곳은 아니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던 그런 사랑의 나라였지만 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지못했다. 내 끝은 세드엔딩으로 막을 내렸지.
그래도 너만큼은 행복했으면 한다. 내가 너의 모든 애환을 가지고 사라질 테니 세상을 살아가렴. 너는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잖아 모든 것을 한낮의 꿈으로 돌리고 새롭게 샘솟는 행복의 샘이 되어주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그런 끝내주는 사랑을 하지는 못했으니 너만큼은 죽음까지도 이기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끝맺어줄래?
말이 맞지는 않지만 나는 널 사랑했기에 널 버렸다. 너와 나의 세계가 맞지 않아서 널 놓았다. 난 오랜 원념들 속에서 죽도록 살아가겠지. 어쩌면 죽음보다 더 힘든 그런 곳으로 가겠지. 죽음은 아름답지 않았다. 조금도 정의롭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