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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면

by 석현준


목이 매인다.
서걱거리는 모래 위에서 발자국을 남기며



사랑한다 왜 난 그렇게 쉬운 말 한마디를 못했는지. 온 마음을 담은 그런 사랑은 표현 못 했는지. 바람처럼 왔다 사라질 우리의 짧은 인생에 작은 점 같은 나는 네게 모난 말만 했는지. 널 아프게 하는 나를 품속에 품고 꼭 안아주던 네가 밉다.

내 모난 모서리에 찔려 피가 나도 끝까지 안아주던 넌 얼마나 아팠을까.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보지 못한 네가 내어주는 사랑을 어디서부터 배웠을까. 품어주다가 너무 힘들다고 모두 날 떠났지만 너만은 끝까지 남아있었지. 왜 너만 더욱 성숙했을까. 우리 모두 서툴게 처음으로 철이 들어가는 과정 속 왜 너만 즐길 시간 없이 빠르게 철이 들었을까?

내게 남은 것이 점점 사라져 갈 때야 차츰 알게 되던 진실은 너와 날 더욱 아프게 하는지. 이젠 느낌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왜 너를 보면 눈물이 나는지? 네가 있을 때 잘해줄걸. 무쇠 같던 네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이제야 왜 눈물이 흐르는지.

사랑도 사람도 모두 다 도망가 버렸구나. 첫사랑이었던 네가 나의 마지막 사랑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청순가련했던 네 미소가 이젠 오래된 사진첩 속 유난히 빛을 바란 사진들 속에 숨어있지. 여러 아름다운 색들을 뒤로한 채로 흑백 사진 속 너만 찾게 되는 것은 왜 이럴까?

궂은 바다를 보아도 좋았던 우리는 이제 잔잔히 파도가 출렁이는 그런 바다를 볼 수 있겠지. 이만큼 아파했으면 꿈에라도 나와줄 만 한데 끝끝내 나를 만나러 오라는 것처럼 찾아와 주지 않는 넌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유난히 모질고 축축한 사랑을 했던 시간들 속에 너는 나를 보면 웃어 보일까? 아니면 조용히 다가와 내게 기댈까?

사랑은 여전히 아프네요. 죽음이 앗아간 사람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나는 언제쯤 철이 들어올까. 어쩌면 철이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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