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조각

by 석현준

약속하나 하자

누군가 먼저 사라지지 않기로

사라지더라도 편지한 통은 써두기로


따뜻한 봄이 시작된 3월 중 어느 날 우연히 열려있는 옥상을 보곤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옥상에 올라갔어.

옥상에서 처음으로 본건 너였어. 난간에 살짝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널 보고 웃고 있었어.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초여름에는 옥상에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시간을 보냈고

주변이 울긋불긋 해지자 넌 쓰지도 않던 글을 쓰고 내게 선물해 주었지.

슬픈 시 한 편이었어. '결초보은' 나는 네가 쓴 시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

그렇게 시가 잊혀 갈 때쯤 차가운 겨울이 성큼 다가왔지. 겨울엔 옥상에 올라갈 수가 없었어.

네가 사라져 버렸거든. 내겐 과분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사라질 줄이야 온몸에 힘이 쭉 빠졌지.

너와 찍은 사진들을 찾아보다 네가 써준 시를 다시 보았지 시에 제목에서부터 종이 위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지. '결초보은'죽어서도 은혜를 갚는다. 울면서 너의 시를 다시 읽고 또 읽었어.

푸른 초원 위에서 친구를 잊지 못하고 슬퍼하는 서툴고 어설픈 글귀였어. 하지만 내게는 어느 글보다 잊을 수 없는 글이었지.

그리고 생각난 곳은 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날 만나준 그곳.

난 옥상으로 뛰어갔지 하지만 옥상문은 굳게 잠겨있고 문 밑에 작은 편지봉투와 꽃 한 다발이 떨어져 있었고

편지 봉투엔 내 이름과 함께 옥상 열쇠가 같이 들어있었지. 아무 온기도 없이 차갑게 얼어버린 열쇠를 쥐니 서늘한 기운이 피부를 타고 들어왔지.

그 서늘한 한기가 가슴까지 들어왔어.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널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지.

이젠 도저히 문을 열 수 없었어 너와의 추억 때문에 내가 아플 것 같아서.

쉽게 운명처럼 만나 운명과 함께 사라져 버린 너.

"좋아해" 네가 사라진 후에 하는 한탄과 후회의 말이야.

만약 마지막에 만났을 때 내가 네게 말했더라면 널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제 알 수 있었어 네가 쓴 시 속에 화자는 너였던 거야.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서롤 잊을 수 없던 거지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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