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은 썼다. 끈적한 즙이 흘러나왔지만 떫게만 느껴지는 여름이었어. 여름 같던 사람아, 내 너를 고이 접어다 결코 겨울이 오지 않고 막아볼 테니 날 사랑해 줄 수 있니?
청사과 같던 풋풋한 풀 내음이 나는 여름 널 보았다. 하늘은 그만큼 아름답진 않았지. 우중충한 잿빛 하늘을 띄고 있었지. 꼭 나처럼 숨이 막힐 것 같던 장마가 시작되는 되는 날이었지.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희뿌옇게 질린 버스 창문에 네 이름을 적어봐. 꼭 네가 들어있는 것처럼 곱게 적어서 마음 한편에 남겨두지. 네 이름 세자가 적힌 그곳에 너의 얼굴이 보이는듯해. 그리고 널 생각해. 닿을 수 없는 곳에 갇혀버린 널.
미안해, 그곳이 얼마나 쓸쓸한 자리인지 알면서도 널 내버려 두고 와서. '널 사랑한다' 말했던 말 때문에 내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한걸음 뒤에 네가 있을 것 같아서 애초롭게 날 바라보는 네 눈동자가 떠올라서 한걸음 내딛는 게 너무 어려워. 네 기대를 저버린, 사랑을 저버린 나에게 준 신의 형벌일까. 매일 네 꿈을 꿔. 깨어있는 시간에도 잠에든 시간에도 너만 보인다는 말이야. 매번 꾸는 꿈이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눈물을 흘리고 있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꿈이지만 하나,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너와 함께 나도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나. 미칠 노릇이지. 진짜 내게 준 형벌이었을까?
너를 여름 속에 가두고서도 잘 살아가는 내가 야속하기만 하겠지. 아마 평생 내가 마주할 여름에게 사죄하며 살아야 할 거야. 꼭 네 체온과 네 향기가 느껴지는 여름에게. 처음엔 피하려고 했어 너무 밝은 빛으로 내게 와주어서 여름이어서 난 여름이 싫었거든. 눈부시게 찬란한 햇볕만큼 싱그럽게 피어오르는 풀들이 싫었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거든. 세상이 살아날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았거든. 그러다 널 뜨거운 햇살 속에서 처음 만났지. 널 본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졌어. 꼭 전원이 꺼져버린 것처럼 고용해졌지. 그리고 빗속에서 손을 잡고 뛰었을 때 널 평생 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어. 그래도 좋았지. 널 잊을 수 없으니 평생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것이 독이 되어버린 것일까?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서로를 버릴 일도 없었을 텐데 차라리 널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덧없고 덧없는 인생을 나는 구질구질하게 오랜 시간 동안 살아가려고 온 힘을 다해서 내 모든 것들을 버려가고 있네요. 몸은 살아도 마음은 죽어가는지 모르면서 몇 년째 아름다운 인연들을 끊어가고 있어요.
너면 되었다. 참으로 어려운 말인 것 같아. 당신만으로 충분하니 내 모든 것을 당신을 위해서 걸 수 있다는 그런 뜻으로 들려오는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나는 왜 당신을 떠나버리고 혼자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현실은 너무도 아파서? 나만 아프길 바라는 내 마음이었던 걸까? 정말로 알 수 없는 내 마음이고 당신의 눈빛이네요.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너를 떠나버릴까? 나 혼자 좋자고 가차 없이 널 내리칠까? 그래도 한 번쯤은 네 곁에 서서 너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씁쓸한 여름을 맞이하겠지. 아직은 너무 쓰고 평생 동안 입안에 남을 더운 여름이 계속되겠지. 그래도 난 무거운 여름 공기를 짊어지며 당신과 걸어가겠죠? 아마 그렇겠죠. 한 번의 한탄으로 충분했으니 사랑을 저버린다는 것은 내 온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두는 듯했으니.
그래도 그동안 쭉 생각해 보았는데 아직도 네 상처가 아물지 않았으면 그래서 울분을 토하며 날 잊지 못했으면 해.
마지막으로 내 마음도 조금은 알아주라. 좋아하는 사람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 어떤 것 일지 한 번쯤은 생각해 줘. 치졸해 보이긴 하는데 얼마나 아팠을지 내색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