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름을 사고 싶습니다
무슨 값을 지불하더라도 그 계절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나요?
당신의 여름은 아직도 익어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만났던 그때보다 더욱 달콤하게 싱그럽게 피어오르려고 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에게서 여름을 빼앗아 오겠습니다. 함께 행복하자는 말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넌 내게 찾아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얼굴로 매일매일 내 근처를 서성이다 끝내 말 한번 걸어보지 못한 채로 가슴을 애태우고 있었었지. 그거 알아? 나는 사실 알았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으니까. 도서관 이곳저곳 나를 찾아 건너편 탁자에서 책을 읽었으니 우연이치고는 너무 티 났지. 몇 주를 하루같이 내 주위를 맴돌던 네가 사라진 딱 며칠 있잖아. 왜 무척이나 덥고 습하던 여름날 말이야.
며칠간 너를 못 본 그날이었을 거야. 어김없이 공부를 하다가 이제 널 찾는 지경까지 왔지. 많은 말을 섞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동족의식 이런 것 때문이었을 거야. 괜히 밖에서 지나가다 눈 한번 마주치면 반가울 이런 느낌? 그래서 널 찾았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더라. 거의 매번 구석진 커다란 탁자에 책을 올려놓고 한 권씩 읽던 네가 보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나는 내 일에 열중했지.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 시간에도 네가 보이지 않았어. 조금 걱정은 되었지.
밖으로 나와보니 소나기가 내렸지. 우산을 쓰고 신호등 앞에 섰을 때 반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어. 맞아, 너였지. 분명 너인데 꼭 네가 아닌듯했었어. 언제나 생글거리며 웃고 있던 네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아가며 서있는 거야. 온몸은 힘을 다 썼는지 축 처져있었고 얼굴에는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쓸쓸한 표정이 그려져 있었지. 괜히 말 한번 잘못 걸었다간 울어버릴 듯한 얼굴로 비를 맞고 있으니 더욱 초라해 보이더라.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네가 건너길 기다렸어. 오늘 같은 날에 오늘같이 저기압인 너를 혼자 두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네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며 생전 먼저 말 걸어보지 않았던 네게 말했지.
"안녕?"
너는 황급히 놀라서는 나를 올려다보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체 어쩔 줄 몰라했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나를 지나쳐 가려고 했지. 내겐 아무것도 들키지 않았으면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지만 그런 널 지나가게 둘 내가 아니었지. 너의 손을 잡고 근처 편의 점에 들어가 먹을 것을 여러 가지 샀지. 따뜻한 코코아도 샀고 네게 건넸어. 아무리 여름이었어도 네 입술은 파랬고 조금 떨고 있었거든. 그리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었어. 고요한 편의점에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윙윙 들렸지.
옷에 물기들이 말라가면서 조금씩 추워질 때 넌 정적을 깨고 네가 말을 했고 나는 조용히 너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어. 눈물을 흘리는 네게 휴지를 건네기도 했지. 네 이야기는 이러했지. 자신에겐 이제 남은 가족이 없다고 장례식장에 있느라고 며칠 동안 도서관에 못 나왔었다고 이젠 자신은 어떡해야 하냐며 여러 말을 쏟아내며 눈시울을 붉혔지.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 사실 그때의 나는 너를 너무 조금만 알았거든. 안다고 하기에도 미안할 만큼의 너만 바라볼 수 있었거든. 조용히 토닥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어.
너의 훌쩍임이 잦아들 때에 조그맣게 말했지.
"지금을 살아, 이런저런 아픔만 기억나는 과거는 벗어버리고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도 말고 지금을 살아. 지금은 내가 옆에 있잖아. 아프기만 한 네 여름을 내가 모두 가져갈 테니까 너는 달콤하고 싱그럽게 그렇게 익어가는 여름 과일처럼 살아."
그 후에는 우리 관계가 바뀌었어. 너랑 나에서 우리로, 함께로 바뀌었지.
그래서 다시금 물어봅니다.
"당신의 여름은 달콤하게 싱그럽게 익어가고 있나요? 그럼 됐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하다면 모든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