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헤어지고 싶습니다.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잊어버렸으면 합니다.
나조차도 내가 무섭습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어요.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좋아하게 되면서 점점 심해진 것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살아온 내겐 사랑이 부족했죠. 그래서 점점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라지게 두지 않기 위해서 작고 어린 과거 속 아이가 날 움직였습니다.
사소한 질투에서 짧고 가벼운 거짓말 하나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요. 어쩌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자아를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조절하지 못할 것들에서 나의 괘도에서 벗어나버린 건 당신을 증오한 내가 감수해야 할 아픔이라 생각합니다. 많이 힘들었나요? 그토록 아팠을까요? 미안할 따름입니다.
날 살리던 것들이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나 혼자서 느낀 환각이었을까요. 아무튼 내 주변의 원동력들이 날 조여오기 시작했어요. 나는 너무나 큰 괴물과 싸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싸움 속에서 날 점점 잊어가면서 괴물에게 물들어갔고, 인지하지 못할 만큼 깊이 그리고 천천히 빠져들어 결국 나도 괴물이 되었습니다. 검고 푸른 눈을 가진 괴물로 변하자 사람들은 날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겉모습은 털끝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던 욕망에 사로잡혀서 어쩔 줄 모르는 날 보며 혀를 차고 배척했습니다. 내 마음까지도 보였던 걸까요?
이렇게 사라질 수 없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난 모두를 죽였어요. 그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끝내 죽음보다 못한 삶을 선사해 버렸습니다. 복수에 불타오른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고 모두를 죽이다 당신까지 죽이는 결론에 도착해 버렸죠. 어쩌면 당연하지만 죽을 만큼 힘든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후회했습니다. 찢어지는 고통에 몸져누운 당신을 보며, 아픔에 내지르는 괴성을 들으니 그제야 내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습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게 하지만 생생하기만 한 기억들이 뇌리를 찔렀고 내 마음도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슬피 울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나였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았습니다. 신이 내게 준 벌이라 생각하고 달게 받았습니다. 그래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욕망은 또다시 나를 깊은 수렁으로 이끌어 내렸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게, 누구도 함께하지 못할 만큼 좁은 공간에서 홀로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가고 싶습니다.
내가 저지른 악독한 모든 것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하다못해 기억이라도 잃고 싶습니다.
이젠 그냥 사라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