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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탄생

78. 웁스,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by 판도


맙소사! 내가 완벽주의자였다니.


선생님, 그 말 믿어도 되는 건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갱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보통 사춘기가 지나면 독립된 자아를 가진 인격체로 거듭 태어나 본격적으로 개체의 청춘이 시작되지만, 갱년기는 당연히 그와 반대의 양상을 보입니다. 인생의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지요. 화려한 꽃과 눈이 부시게 푸르렀던 잎은 우수수 떨어져 버리기 시작합니다. 외양만이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는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화가 많아졌습니다. 잘 참지도 못합니다. 세상사 온통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주위와 어울리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참 못났다는 생각뿐입니다. 한심하고 처참합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서럽습니다. 눈물도 많아졌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감정에 기복이 심하다는 말입니다. 제대로 제어도 되지 않습니다. 육체는 또 어떤가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갱년기의 여러 증상과 문제를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었지요. 세상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졌습니다. 마음부터 보듬어 주는 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정신과 의사가 쓴 '마음 지구력(윤홍균 저)'이라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동감도 하고 자책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완벽주의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저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한 사람이기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완벽주의자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완벽주의자였습니다. 바로 저였습니다.


이제 와서 완벽주의자라니. 아는 게 병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혼돈이 엄습해 옵니다. 분명한 것은 모르고 지내던 이전의 삶과 비교해서 앞으로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긍정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완벽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사의 아주 먼 옛날, 제가 저만의 생각을 갖게 되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저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추구했던 완벽주의는 이렇습니다. 남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철저하게 올바른 생활을 자신에게 강요했습니다. 길거리에 침을 뱉으면 안 된다. 휴지는 반드시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 욕을 하면 안 된다. 좌측통행(지금은 우측통행)을 해야 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한다. 남의 답을 훔치거나 치팅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저만의 울타리를 높이높이 쌓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울타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자책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참으로 피곤한 인생이었습니다.



우측통행.jpg 오늘 아침 산책길에 찍은 팻말 하나


그나마 자신을 향한 통제만으로 끝나면 다행이지요. 문제는 제가 정한 기준을 타인에게도 그대로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철의 임산부석에 태연히 앉아 있는 멀쩡한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둘레길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대놓고 틀어 놓고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의 눈빛을 쏘아댑니다.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을 보면 때려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결국 참고 눈 감고 귀를 닫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생의 가을로 접어든 지금도 그 시절의 많은 부분을 지키려 애쓰고 있으니 스스로가 불쌍할 따름입니다.






식당의 주인 된 자가 완벽주의자라면 참 곤란합니다. 자신이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주위마저 힘들게 만듭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스스로 까마득히 높은 울타리를 세워 놓고 직원들에게 지키기를 강요합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대놓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이 저의 눈높이에 맞게 행동하기를 은연중에 바라면서 저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그들에게는 차마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거립니다. 초능력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기대와 다른 모습에 혼자서 속상해할 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참고 또 참다가 그 한계를 넘어 버리면 폭발하고 마는 겁니다. 그야말로 자폭입니다.


알바생도 초능력자도 최선을 다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보다 잘 처리하려 애씀에도 똥멍청이 완벽주의자 사장만이 그것을 모릅니다. 모르면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자신의 해야 일을 하면 될 것을 그것도 아닙니다. 홀로 속상해하고 애태웁니다.


아!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완벽주의는 개에게나 줘 버리고 불완전한 인간답게 둥글둥글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정말 그러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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