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초밥의 탄생
사월이 찾아왔습니다. 초능력자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마침내 초밥을 팔겠다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니 어느 손님이 묻습니다.
"그 초밥 직접 만드는 거요?"
질문의 속내를 모를 리 없습니다. 낙지집에서 생뚱맞게 무슨 초밥이오? 그 초밥 돈 내고 먹을만하오? 뭐,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그럼 다른 집 물건을 떼다 팔겠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였지만, 그의 멍청한 질문에 이제 와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해봅니다.
"초밥을 제일로 좋아라 하는 사람이 초밥을 만드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미슐랭 식당 초밥은 처음부터 별 달고 팔았겠소?"
오늘도낙지를 가꾸어 키워 가는 두 사람, 저와 초능력자는 대학교 과 선후배 사이입니다. 제가 군 전역을 하고 3학년에 복학하면서 만나 공부보다는 연애에 집중하다가 졸업 후 결혼에 골인하였지요.
제가 날 때부터 달걀귀신이었던 것처럼, 그는 초밥 귀신이었습니다. 모든 음식 중에서 초밥과 회를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저희는 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하였기에 남달리 그쪽 음식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본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현지 정통 초밥에 입맛이 길들여지기도 했고요. 지난 1월 말의 일본 가족여행에서는 아예 작정을 하고 초밥집을 순례했지요. 맛있는 초밥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죠. 그만큼 그는 초밥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초능력자는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이상하게도 일식 조리사 자격증은 없네요), 맛에 대한 감각을 타고났기에 한 번 먹어 본 음식을 그대로 복제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초밥에 대한 애정까지 깊으니 그가 만드는 초밥은 남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저는 깊이 신뢰하는 것이고요.
사실 올해 들어서 그는 오늘도낙지 가까운 곳에 새로운 가게를 낼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초밥집입니다. 규모를 최대한 줄여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초밥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계획했지요. 다행히 장사가 잘되면 점포를 늘려 가며 직원 한 명이 꾸려갈 수 있는 프랜차이즈로 만들 계획도 갖고 있었고요.
아쉽게도 맘에 든 점포와 인연이 닿지 않아 초밥집 오픈은 어려워졌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 지금 식당에서 초밥을 시작해 보자 마음먹게 되었던 것이고요. 시작은 미약하건만, 언젠가는 창궐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오늘도낙지에서 '마카세 특 초밥'을 시작하여 어느새 2주가 지나갔습니다. 초밥 전문점이 아닌 식당에서 기존 메뉴에 더하여 초밥이란 전문 음식을 만들고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전에 계절 메뉴로 올렸던 연어덮밥처럼 하나의 재료가 아닌, 네타(밥 위에 얹는 재료)를 다양하게 구성해야 했기에 재료 준비(소량 다품종이라는)와 관리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음식을 손님 테이블에 올리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힘든 조건에서도 초능력자는 오직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마음 하나로 초밥 마니아를 늘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엊그제는 6인분, 어제는 4인분의 초밥 세트(초밥 + 차완무시 + 오차즈케)를 판매했으니 저희 부부로서는 실로 고무적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발전이지요.
이렇게 그는 또 하나의 멋진 메뉴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힘들지만 기꺼이 즐기며 맛있는 초밥을 짓는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사람의 일에는 한계도 없고, 늦은 시기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