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사람들 이야기
오늘은 식당을 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곳이 바로 식당이니까요.
먼저 '가장 소중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장사를 하는 곳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당연히 '단골'입니다(물론 오시는 모든 분이 소중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장사를 해보니 단골에도 격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식당을 하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진정 몰랐습니다.
저마다 '단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이 다를 겁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골이라고 하면 좋아하겠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단골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단골이란,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곳 또는 손님.'을 말합니다.
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느 요식업 컨설턴트의 견해로는 단골이란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오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일 년에 두 번 오는 손님도 단골이니 아무나 단골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의 기준으로 말한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게를 찾는 사람이 단골입니다.
단골의 격이란 이런 겁니다(개인적인 제 취향입니다).
하. 가장 낮은 수준의 단골은 쓰레기 같은 단골입니다.
올 때마다 거들먹거리고 돈 자랑 하고 남을 업신여기고 식당 직원과 사장을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사람입니다. 이른바 진상 단골입니다.
이 부류의 손님을 대하며 처음에는 속이 터졌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같은 감정이 무뎌지더군요. 한편으론 약아빠지게 되고 한편으론 지혜로워진 거랄까요. 아무튼 돈 버는 거는 좋지만 반갑지는 않은 손님입니다.
중. 반갑지만 성가신 단골입니다.
바쁜데 자꾸만 자기를 봐달라고 합니다.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꼭 사장과 눈을 맞추려 합니다.
단골이라는 존재감을 제 머릿속에 새기려 애씁니다. 고마운 사람은 맞는데 종종 꼴 보기 싫습니다. 생색내는 사람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 가장 고마운 사람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오시는데 말이 없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절대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혼자이거나, 부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저 조용히 밥 한 끼 드시고 가십니다. 물론 잘 먹었다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습니다. 공기 같은 존재이지만 없으면 안 되는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
다음으로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한때 자주 오시다가 갑자기 발길을 끊는 사람입니다. 이유를 모르기에 무섭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안 오시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멀리 이사를 가신 건 아닐까 스스로를 위로하다 가게 앞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모르니까 무섭습니다. 아무튼 잘해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무언가 기분이 나빴다면, 섭섭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더 조심하고 잘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쳐간 인연의 사람들입니다.
길에서 마주쳐도 기억을 못 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한때는 저희 식당을 사랑해 주셨던 분들입니다. 학교를 졸업하며 알바를 그만두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을 직원들이 그분들 중의 하나입니다.
메뉴가 사라져서 못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산낙지 마니아는 산낙지 메뉴가 없어져서 오실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단종이 되었으니 엄청 아쉬울 겁니다. 연포탕, 탕탕이, 해물파전, 뿔소라, 전복버터구이, 명란 파스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스쳐 지나간 인연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돈일까요? 힘일까요? 사랑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요?
연말이 되어 변함없이 지금의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면, 식당의 모습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메뉴는 더 줄여 세 가지 정도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좀 더 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고자 합니다. 오래가려면 몸도 일도 가벼워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