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The 3rd Life(1):나의 신년 만다라트

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by 판도


우리는 나름의 비밀 병기를 품 안에 숨기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나 이런 생각을 했지?


며칠 전의 일이다.


가게에서 알바생이 전화를 받고 한참을 대화를 나눈다.


손님이 가게 주소를 자기 핸드폰에 찍어 달라는 요구가 핵심 내용.


2026년 새해가 밝았으니 골목식당 오늘도낙지가 영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8년째다.


그런데 지금껏 자기 핸드폰에 주소를 찍어 보내 달라는 무례한 요구와 무리한 서비스를 강요하는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득 떠올랐다.


그는 어떻게 오낙의 전화번호를 알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소를 물어?


이해가 한참 안 가는 상황이다.


알바생은 툴툴거리면서도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그 무뢰한이라고 추측되는 자는 영업이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몰상식한 사람이 서슴없이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고작 나는 그 자의 뒷담화밖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비밀 병기 하나쯤은 품 안의 비수처럼 갖추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비범함을 간직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거다.


*


드디어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에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친구들이 은퇴를 맞이한다.


나야 자업영자이니 그들과 같지 않다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업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형국이니 그들보다 더욱 위태로울 수 있다.


아무튼, 2026년 새해를 맞이하여 나는 스스로에게 내 인생의 새로운 삶, 'The Third Life'의 시작을 선포했다.


내 인생 연대기에서 First Life는 마흔 살까지, Second Life는 나이 마흔에 한국을 떠나 중국과 호주 생활을 거쳐 골목식당 사장으로 살아온 작년까지이다.


이제 나는 도시를 떠나 남쪽 바닷가 마을로 가서 내 인생 3번째의 삶을 시작하련다.


*


시골의 나의 집은 목조주택으로 방 둘, 화장실이 둘, 다락에 천창이 있고 테라스와 유리 온실과 창고와 주차장과 그네와 텃밭이 있는 집이다.


물론 꿈이다.


나는 킹스맨을 닮은 멋진 사장으로 귀촌하여 트렌디한 사업을 할 것이다.


아주 긴 통창이 있는 실내, 사람들이 선베드에 누워 트렌디한 음악을 들으며 일광욕을 즐긴다.


역시 꿈이다.


실내에는 내가 재배한 허브향이 잔잔하게 진동하고 또 나누어진 어느 공간에서는 진한 커피 향과 함께 커피를 판매한다.


물론 이것도 꿈이다.


꿈을 넘어선 만화 같은 몽상이다.


현실은?


나는 그저 겁 많고 한물가고 있는 사내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현실에 굴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무서워서 망설일 어린아이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귀촌하여 1인 출판사를 차릴 것이고 1호 출판물로 나의 글을 출간할 것이다.


누리지 않을 것은 버리고 누릴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 것이다.


살다가 돈이 필요하면 일당벌이를 하며 한 끼 밥값을 마련할 것이다.


또 서울에 남은 초능력자를 위해 가끔은 싱싱한 해산물을 보내줄 것이다.


때론 내려와 함께 낚시를 즐길 것이다.


*


그래서 2026년 신년 계획을 세웠다.


친구가 보내준 오타니의 과거 만타라트 계획표를 참고로 나만의 계획을 세운 것.


오타니의 만다라트 계획표는 치밀하다


계획을 세우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또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 먼저 배워야 하는 일 또한 많다.


내 소설과 에세이로 독립 출판을 하고, 마을 책방을 열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꾸준히 책을 읽고, 드론을 날리고, 강아지를 내 손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집수리와 전기도 내 손으로 고치고, 수채화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하프 마라톤을 완주해야 한다.


2026년 나의 만다라트 계획표. 세부 내용은 지웠다.


그리고 중요한 것,


배우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해 사전에 배우고 갖춰야 할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귀촌의 유유자적한 가난한 삶이다.


물속에서는 두 발을 부지런히 놀려도, 겉으로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고흥 바닷가 마을을 거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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