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인심을 잃는다는 것은
지난주 일요일 모처럼 초능력자와 영화를 보았지요. 5호선이 지나가는 하남미사지구에 있는 영화관이었는데요, 큰 건물 곳곳에 이가 빠진 것처럼 빈 점포가 눈에 띄더라고요. 미사지구라면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신시가지임에도 불구하고 공실이 많은 상가의 모습에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장사가 어렵긴 어려운가 봅니다. 모두 잘 헤쳐 나가시겠지만요.
제가 아는 대박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맛있는 동네 골목식당으로 입소문이 나더니 TV 방송 프로에 나오고서는 좀 더 지역적 범위가 확장되어 동네 맛집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집도 역시 인심이 후한 식당으로서 대박 식당의 자리를 꿰찬 곳입니다. 이 식당의 강력한 무기(인심)는 바로 저의 최애 음식 중의 하나인 계란말이를 무한 리필로 제공한다는 점이었지요. 물론 메인 메뉴도 맛이 있고 가성비도 뛰어난 식당인데 맛있는 계란말이의 무한 리필 서비스는 진정한 화룡점정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알려지고 돈도 벌었던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집을 처음 방문한 제 앞의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달랐습니다. 좋지 못한 변화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혼자 왔다는 이유만으로 주문하는 짧은 시간 내내 불편하였습니다. 혼자 온 손님을 꺼려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당당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단한 계란말이는 나왔지만 무한 리필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무한 리필의 공짜 서비스에 눈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맛집 가게의 인심이 변한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제 입장에서 보면 식당 사장님이 초심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줄을 서지도 않고 들어가 운이 좋았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게의 부정적인 변화는 손님들이 귀신같이 알아채니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인심'이라는 특별한 장치가 그저 그런 음식을 예쁘게 포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동네 골목 안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식당이, 인심이 후하다는 착시 효과 하나만으로 맛집이 된 것은 아닐까? 진심이 아니면서도 진심으로 치장한 인심이란 것이 있지는 않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착잡한 기분이,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쁜 대박 식당은 고객을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얕잡아 보지는 안을는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니 이쯤에서 그만하겠습니다. 결국 그렇게 계란말이 몇 조각을 씹으며 주인을 뒤로한 채 가게를 나왔습니다. 아쉽지만 다시는 그 집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인심을 얻기는 어렵지만 어렵게 얻은 인심을 잃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아쉽지만 이번에도 실제 사례입니다.
작은 상권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는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내부 문제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그 식당은 다시 문을 열자마자 예전의 명성대로 찾아주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지요.
주방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갈 때마다 맛이 바뀌었습니다. 아주 안 좋은 징조입니다. 짜장면은 어떨 땐 소스가 묽었고 군만두는 종종 만두피가 터져서 만두소가 기름범벅이었습니다(그것을 태연히 손님 테이블로 가져오는 것은 참 무례한 행동입니다). 한 번은 참다못해 그것을 지적했지만 사장은 미안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더군요. 제 앞에서 종업원을 부르더니 '이거 바꿔 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고객의 컴플레인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는 한 마디로 안하무인이었습니다. 인심을 잃고 있는 그곳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로 말이죠.
물론 저희 식당만 떳떳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때로는 효율화의 명목으로 때로는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는 이유로 처음과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저 또한 초심을 잃었다는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심을 잃고 얻는다는 것이 어찌 식당만의 일이겠습니까. 하나의 가정도 그렇고 친구 사이에도 그렇고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더 나아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사법부, 행정부 쪽의 사람들을 보면 가관도 아닙니다. 어렵게 얻은 인심이나 인기를 한 순간에 잃고 나락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멍청한 짓거리로 인한 자업자득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들 때문에 국격이 떨어지고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 그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진심이 빠진 가짜 인심은 언젠가 속셈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환심만을 사려는 검은 마음이 요즘 세상에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아무튼 누구이건 인심을 잃어버리면 좋은 방향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외톨이로 지내기보다는 좋은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새해에는 모두가 진심 가득한 인심을 주고 받으시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