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과 신사, 그리고 나의 선택
소위 임관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사관후보생 과정은 흔히 ‘지옥의 문턱’이라 불렸다.
새벽 기상 후 이어지는 구보, 빗속의 완전군장 행군, 끝없는 전투훈련.
몸은 한계에 다다랐고, 마음은 수없이 흔들렸다.
동기들이 하나둘 퇴교를 선택할 때마다 ‘나도 여기까지인가’라는 유혹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사실 내가 장교의 길을 꿈꾸게 된 시작은 대학 시절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었다.
젊은 후보생이 고된 훈련 속에서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며, 끝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단순한 스크린 속 장면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추구하고 싶던 가치-책임, 리더십, 도전-를 보았다.
그 장면은 단순한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게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메타포처럼 다가왔다.
물론 영화 하나가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장면은 내 안에 있던 갈망을 불씨처럼 지폈고, 실제 사관후보생 시절의 고된 훈련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좌절의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완전군장 행군에서 탈진해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고, 교관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 내 부족함이 낱낱이 드러나는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웠다.
“그만둬라, 더는 못 버틴다.”
“아니다, 끝까지 버텨라. 이 길을 포기하면 평생 후회한다.”
육체적 강인함은 기본이었다.
앞으로 소대 지휘자가 되려면 누구보다 앞에서 뛰고, 누구보다 오래 버텨야 했다.
군사 지식과 전술 이해도 필수였다.
지휘자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정확히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야전교범을 달달 외우고, 전술 지도 앞에서 밤을 새우며 준비했다.
이 모든 노력은 단순히 다이아몬드 한 개를 달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지휘자가 된다는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갈등과 흔들림 끝에, 나는 결국 임관의 순간을 맞았다.
계급장을 달고 임관 선서를 하던 그날, 땀과 눈물의 시간들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었다.
같은 훈련장에서 함께 버티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서로의 어깨를 붙잡아준 동기들 덕분이었다.
“나는 드디어 이 길을 증명했다”는 자부심은 나 자신뿐 아니라, 끝까지 함께 걸어온 동기들과 함께 나눈 감정이었다.
병과교육을 마칠 무렵, 동기들 사이의 화두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지휘자로써 첫 부임지를 정하는 자대배치였다.
“전방에 가서 먼저 고생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동기도 있었고,
“난 군 생활 오래 안 할 거니까 후방이 좋겠다”는 동기도 있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대화가 매일같이 오갔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달랐다.
나는 진짜 소대 지휘자로, 완편부대에 부임해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리더십은 책 속 문장이 아니라, 사람과 상황을 지휘하는 무대에서만 증명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첫 부임지가 배정되었다.
후방사단 ○○연대 ○○대대 ○○중대.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곳은 나를 또 다른 충격 속에 빠뜨렸다.
중대원이라고 해봐야 고작 몇 명뿐.
무엇보다 내가 지휘해야 할 소대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소대 지휘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나의 기대는 단숨에 무너졌다.
임관의 자부심은 곧바로 의문으로 바뀌었다.
“부하가 없는 리더십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돌아보면 이 경험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리더십은 계급장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실행으로 이끄는 과정 속에서 증명된다는 것.
군대는 병이든 간부든 누구에게나 힘겨운 시험대였고, 나 역시 그 속에서 한계와 모순을 마주하며 고민해야 했다.
소대원이 없었던 첫 부임지는, 어쩌면 내가 리더십의 본질을 묻게 된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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