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정답이 내 몸의 답은 아닐 때
아무도 모른다.
치료가 끝난 날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걸.
나는 그날 이후에야 비로소 알았다.
몸도 마음도,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걸.
삶은 조용히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마치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표준치료 이후, 나는 건강을 ‘정답’에서 찾으려 했다.
운동, 식단, 생활 패턴…
하나라도 놓치면 다시 흔들릴까 두려워
책을 쓸어 담듯 읽고,
누군가의 방식과 성공기를 따라 했다.
그중에서도 존 맥두걸 박사의 자연주의 식단은
그 시절의 나를 강하게 잡아끌었다.
‘먹을수록 치유된다’는 말은
지푸라기 같던 내 마음에 명료한 길처럼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성실하게 실천했다.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려낸 이상적인 건강함을 기준으로.
배부르게, 가득.
허기를 없애는 것이 곧 치유라고 믿으면서.
그 식단은 내 몸과 맞지 않았다.
약해진 소화력에
생야채와 차가운 음식은
조용한 자극이 아니라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기침이 시작됐고
그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도 모른 채 한 달, 두 달…
몸은 더 지쳐갔고
식도는 점점 예민해졌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잘 먹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뜻이 아니라는 걸.
누군가의 정답은
곧바로 내 몸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걸.
나는 그 식단을 덮었다.
책장을 덮고,
무조건 옳다고 믿었던 방식을 덮고,
오랫동안 누적된 ‘타인의 정답’을 덮었다.
그 대신
하나씩,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 몸이 받아들이는 방식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뜨겁게,
작게,
천천히,
부드럽게.
단백질 한 숟갈이 들어갈 때의 감각,
따뜻한 죽이 내려가는 속도,
내 위장이 깨어나는 데 걸리는 그 짧고 섬세한 시간들.
이 과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직 내 몸이 알려준 길이었다.
기침을 반복하며,
불편함을 느끼며,
아주 서서히 찾아낸 나만의 템포였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 다른 리듬을 가진 몸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몸은 늘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조용해서,
너무 익숙해서,
너무 당연한 소리라고 여겨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
그리고 이제야
그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4화에서는
내 몸의 속도에 맞춰 하루 식사 템포를 조절하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침의 한 숟갈이
어떻게 점심과 저녁까지 이어지는지,
그리고 몸이 ‘안정’이라는 방향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변화를 부드럽게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