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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라 장 Dec 16. 2021

코비드 코모리

코비드 코모리

  COVID-19와 히키코모리를 합친 합성어로,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반 강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다. 굉장히 거창하게 적었지만, 사실 방금 전 남편이 지나가며 농담 삼아 던진 표현이었다.


 2020년 3월 코로나의 여파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시기, 나는 시카고의 셰어 아파트 방 한 칸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타국에 빠르게 적응하겠다는 명목으로 처음엔 여행자 숙소, 이후엔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공용 호텔에서는 오가는 여행객들의 성격에 따라 매일의 수면 조건이 바뀌었고, 기숙사에서는 일주일에 4-5번 새벽 3시까지 파티를 즐기는 미국 아이들과 지내며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기숙사 생활 중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뛰쳐나와 아시안 2명이 함께 지내는 일반 아파트로 옮겨가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잠 다운 잠을 잘 수 있겠다... 하고 숨을 돌릴 즈음, 락 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존중되는 생활의 시작이었다.



  함께 지내던 중국인들은 아침이 되면 움직이고, 저녁 10시 이후로는 소음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단지 그것 만으로도 삶의 질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바깥은 전염병으로 불안하고 흉흉했지만, 적어도 집 안에서 만큼은 그간 누리지 못했던 안정감을 마음껏 누리고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 계시던 가족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기 전 까지는 말이다.


  70대 후반에 지병을 앓고 계셨던 아버지는 증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그즈음 시작된 방역 수칙으로 인해 가족과 격리된 채 병원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디셔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약해진 아버지를 더욱 쇠약해지게 만들었다. 갈수록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아버지를 보며 담당의와 가족들 모두 마지막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당시 4년째 교제 중이던 남자 친구(현재의 남편)와 서둘러 결혼을 준비하게 된다.


  급박하게 한국에 돌아온 뒤 자가격리를 마치자마자 아버지를 찾아뵙고, 이후 상견례, 결혼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때의 상황을 짧은 글로 요약해 내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학기 과정을 온라인으로 들으며 시험을 치르고, 상황이 허락될 때마다 병원을 찾아가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결혼식을 준비하기까지 내게 허락된 건 고작 3달의 시간뿐이었다. 난감하고 곤란한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식장에 들어갈 때까지 만이라도 버텨주시길 바랐는데, 아버지는 청첩장만 받고서는 딸이 결혼하는 모습은 보지 못하셨다. 결국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기 전에 상복을 먼저 입게 된다. 예비신랑은 아직 식을 올리기 전이었지만 기꺼이 3일의 시간을 함께해 주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 참 덥고, 버겁고, 곤란한 일이 많았던 3달이었다.


  폭풍같은 여름을 지나 보낸 뒤, 내 앞에는 또 다른 방식의 격리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확진자가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는 탓에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고, 이제 막 결혼을 한 신혼부부가 바로 떨어져 지내는 것도 가혹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학업을 진행하기로 결심을 한다. 당시(지금까지) 군 복무중이던 남편은 군 부대 근처의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남편을 따라 한번도 가본 적 없는 OO군 OO면 OO리의 한 작은 마을로 떠나게 된다. 군 관계자들과 군 가족들만 지내는 마을. 배달의 민족에 딱 2개의 업체만 뜨는, 차가 없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수풀이 무성하고 공기가 참 좋은 마을.


  나의 코비드 코모리로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코비드코모리, #코로나, #히키코모리, #낯선마을에서의5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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