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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라 장 Dec 16. 2021

코비드 코모리 #2

완벽한 나의 공간

코비드 코모리: COVID-19와 히키코모리를 합친 합성어로,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반 강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완벽한 나의 공간

  반경 1미터.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내가 온종일 머무르는 공간의 범위이다. 남편의 군 복무가 끝나거나 내가 다시 출국하는 대로 곧 떠나게 될 집이었지만, 혹여라도 집에 있는 동안 우울한 기분에 휩쓸리기 싫다는 생각에 나는 최선을 다해 집의 이곳저곳을 신경 써서 꾸미기 시작했다. 처음 신혼집에 입성한 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도착하는 택배 상자와 무섭게 늘어나는 살림에 남편이 다소 당황스러워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꾸며 둔 상태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으니 그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정말이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거실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의 내 일정은 오롯이 사이버 유학생활을 이어 나가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기지개 한 번 쭉 켜고 커피 한 잔 들이켠 후엔 노트북 앞에서 과제물을 확인하고 수업에 필요한 분량을 채워 나가는 게 매일의 주된 업무다. 늦깎이 유학생으로서 도심 속 분주한 캠퍼스 생활을 해 내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기껏 시작한 유학을 연고 없는 조용한 마을에서의 나 홀로 공부로 대체하는 것 또한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다. 답답함에 창문을 열면 아담하고 나이 든 아파트와 넓디 너른 논과 밭이 펼쳐졌다. 어느 날은 아랫집 아이가 사고를 쳐 혼이 나고, 어느 날은 옆 집에 몇 명의 손님이 오고 갔으며, 또 어느 날은 윗집 이웃의 장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부득이하게 알아야만 했다. 낯선 이곳의 담벼락은 참 낮고도 얇았다.


  처음엔 동네 산책도 다녀보고, 단지 내 주부들이 모인 모임에도 참석해보았다. 하지만 걷고 또 걸어도 이 주위엔 나갈 핑계가 되어 줄 만한 목적지가 없다는 사실과, 평균 2명 이상의 자녀들을 기르고 계신 언니님들의 달콤한 휴식시간엔 자녀 없는 신참이 끼어들만한 적절한 구실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점차 집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 묘한 회의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가도 어차피 갈 데가 없는 걸."



  나는 문명의 혜택을 온몸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특히, 시각적인 만족은 내 즐거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사계절 내내 색깔 말고는 변함이 없을 것 같은 장면과 혼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매우 한정된 생활 반경. 아. 이건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어려움이었다.


  가끔은 빠른 단념이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울 때가 있다. 나는 점차 심해지는 감정 기복을 다스리기 위해 불안할 때마다 책꽂이의 책들을 키와 각을 맞춰 정렬했다. 흩어진 물건들의 자리를 지정하고, 옷방의 옷들을 색깔별로 나열하고, 냉장고를 열고 닫으며 조미료와 음료수 반찬통들을 줄 세워 정리했다. 그래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을 땐 향수를 이곳저곳에 뿌렸다. 좋아하는 향기가 풍기니 한결 살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무드등까지 켜 놓으니 갇힌 이곳도 제법 분위기를 풍길 줄 아는 듯했다. 허우적거리고 빙빙 돌아도 어차피 그 자리인 갇힌 공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발버둥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나가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지만,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집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은 완벽한 나의 공간이 되어야만 했다.



   -Cascade-


#코비드코모리, #코로나, #히키코모리, #낯선마을에서의5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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