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20대 초, 수술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부터 나는 막연히 알고 있었다. 앞으로의 삶이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갑상선암이었다. 사람들은 '감기 같은 암'이라고 말했다. 예후가 좋고 생존율이 높고 비교적 가볍게 지나간다고. 그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 암은 분명 암이었다. 칼이 지나간 자리의 통증, 수술 후 깨어나며 느꼈던 두려움,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던 피로와 어지러움, 이전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 일상. 목에 남은 흉터보다 더 선명했던 건 수술 후 깨어났을 때의 멍한 통증과 이유 없이 가라앉던 하루들이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그리고 오래 나를 괴롭혔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픔 그 자체보다도 그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많았다. “괜찮아질 거야.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 마음을 편하게 가져.” 모두가 나를 위해 건네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픈 한가운데에 있을 때 그 말들은 유리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은, 이미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린 나에게 쉽게 닿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아야 한다’는 말이 또 다른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들에게조차 아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혹시라도 더 걱정하실까 봐, 그래서 괜히 괜찮은 척 웃으며 하루를 넘겼다. 병원에서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을 했다. 진료실 문을 나설 때까지는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병원을 나와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정류장 이름들과 익숙한 거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울었던 날들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눈물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 시간은 어두웠고 그래서 더 외로웠다.
시간이 흘렀다. 몸은 조금씩 일상을 회복했고 마음도 평온을 찾아갔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났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시 내 삶에 들어왔을 때 기쁨만큼이나 망설임도 함께 따라왔다. 이 이야기를 언제 해야 할까. 혹시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많이 고민하다가 어느 날 용기를 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숨기지 않고 말했다. 내가 20대 초에 수술을 했다는 것 그 시간이 내 삶에 남긴 흔적들에 대해서.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 대신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혼자서 많이 애썼을 것 같다고.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던 ‘괜찮다’는 말보다 그 ‘애썼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됐고 이미 충분히 견뎌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비교하지 않아도 그 시간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듯했다. 내 과거의 아픔을 가볍게 만들지 않고 지나온 시간으로 존중해주는 순간이었다.
아픔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가볍게 덮어두지도 않고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괜찮아질 거라는 미래형 위로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다정하게 인정해주는 태도. 그게 나에게는 큰 사랑이었다. 이 마음을 알게 된 뒤로 나는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살아가지만 혼자서만 견뎌온 시간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종종 예전의 나를 본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아팠던 시간도 외로웠던 마음도 결국 그와 함께 있는 지금의 나를 만든 일부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