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파우디스 <양을 잡아먹는 늑대>
늑대를 처음 만난 곳은 대학 표본실이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첫눈에 늑대 표본임을 알아보았다. 표본으로 아쉬운 조우였지만, 감동적인 피조물 그 자체였다. 그때의 강렬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대전 동물원에 늑대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온 가족을 차에 태우고 달려갔다. 남한에서는 늑대는 멸종위기종 1급으로 이미 절멸했을 것이라고 본다.
크리스토퍼 파우디스의 작품 <양을 잡아먹는 늑대>는 늑대와 여우를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늑대는 탐욕스럽게 양의 배를 갈랐다. 여우는 호시탐탐 늑대의 먹이를 훔칠 기회를 본다. 눈을 휘둥그레 뜬 늑대는 그런 기회를 줄 리 만무하다. 중국 사마천의 『史記(사기)』에는 ‘늑대가 양을 기르는 격’이라는 ‘여량목양(如狼牧羊)’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늑대는 탐관오리이며, 양은 백성이다.
늑대는 억울하다. 양을 잡아먹는 괴물, 고혈을 빨아먹는 탐관오리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1872년 미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스톤에서도 늑대는 박멸 대상이었다. 1926년 옐로스톤의 마지막 늑대가 사살되었다. 늑대가 사라진 국립공원은 혼돈의 늪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건강했던 생태계가 병들어갔다. 국립공원 생태계 복원에는 다시 늑대가 필요했다. 1995~96년 캐나다에 살던 늑대 31마리를 공원에 풀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생태계의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늑대는 생태계에 핵심종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한다. 무리는 리더가 이끈다. 리더로 선출된 늑대는 자기보다 공동체가 공생할 수 있도록 헌신하며 인내한다. 그러기에 힘만 세고 난폭한 늑대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무리는 자기 리더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따른다. 늑대 사회의 리더는 인간 사회의 리더보다 더 윤리적이다.
학교에서 교장, 교감을 관리자라고 부른다. 관리자는 시설, 물건 혹은 시스템을 감독하는 사람이다. 관리자라는 용어에는 리더의 덕목이 필수 요소가 아니다. 관리자는 학교 교육 시설 및 행정 등 제반을 담당하면 된다. 2001년 정부는 교육부를 폐지하고 교육인적자원부를 신설하기도 했었다. 학생을 자원의 한 종류로 취급한 것이다. 교육계에도 늑대 리더십이 필요하다. 머리와 가슴을 고루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교장, 교감이라는 행정 자원이 아니라 온전한 지혜와 인격을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양을 잡아먹는 늑대(Wolf rips a lamb)>
예술가: 크리스토퍼 파우디스(Christopher Paudiß. 1630년~1666년)
국적: 독일
제작 시기: 1637년~1638년
크기: 123×183.5㎝
재료: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바이에른 주 미술관(Bavarian State Painting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