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의 일련의 사건들이 나라는 사람을 형성했는가?
일용직 노동자로 자식들 먹여 살리겠다고 매일 매일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나가시는 우리 아버지,
식당에서 파출부로 나가서 조금이라도 생계에 보태겠다고 매일 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자는 우리 어머니.
어릴 때 오빠와 내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집에 가면 그래도 오빠가 있어서 참으로 의지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왜 기억이 나는가 하면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 홀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망토를 두르고 고요한 적막 속에서 ”슈퍼맨~!“하고 외치던 장면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다.
그 나이 때는 외로운 감정이란게 무엇인지 명확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거실, 아무도 듣지 않는 나의 목소리, TV에서 흘러 나오는 음성만큼은 선명히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라는 것이 생겨서 기뻤다.
친구가 신발 주머니를 잃어버렸다기에 지각을 하더라도 같이 찾으러 갈 정도로 친구라는 존재에게 꽤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 진심과 달리 친구라는 존재는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고등학교 이전의 학창 시절이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문득 조각조각 기억나는 파편들을 끄집어 내보면 “못배운 티 난다.” “옷을 왜 그런 것을 입냐.” “쟤 머리에 이 있대! 더러워.” 같은 말들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그 시절을 지워버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못 배운 티 나지 않기 위해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서 수능을 2번 치뤘다
그래서 나는 더러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아침, 저녁 2번 샤워를 했다
그래서 나는 중고여도 이름 있는 브랜드 옷들만 옷장에 가득 채워 넣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그들이 말하는 “못 배운 사람”처럼 굴 때마다 나는 온갖 짜증을 다 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10000원짜라 옷을 입는게 싫고 부끄러웠다. 어머니, 아버지 뭐 하시냐고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괜히 아빠는 건축 회사에서 일한다고 거짓말까지 치기도 했었다.
지금도 어머니, 아버지를 소개할 때 일용직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괜한 편견을 만들 것 같아 말하기 꺼려진다. 물론 지금은 부끄러운 감정보다는 그들의 편견이 싫어서가 더 강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것들에 맞춰서 살아야되는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모든 내 주변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뭐가 당연한지 모르겠고 날 억압하는 모든 것이 다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흔히 말하는 속어로 홍대병이라고 하나? 삶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야될 지는 모르겠는데 남들이 말하는 삶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난 나의 길을 가겠다라고, 정해놓고
이제는 또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삶, 안정적인 삶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내가 참 역설적이다.
결국에는 돈 앞에서 비굴해지고 있는 나를 보니까 말이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회사 취업에 목매다는건지 이제야 또 깨닫는 것이 내 자신 스스로가 우습다.
일련의 트라우마들이 나를 만들고 새로운 나는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겨 또 다른 내가 되는 것
그게 결국 자아 형성의 과정인 것일까 싶다.
침대에 누워 인생을 관망해본 페르소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