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쓸 수 없다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닐터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한 배우가 상대방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
순간, 그 말에 꼿혔다.
사람은 정말 고쳐 쓸 수 없는 존재일까?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단호한
어조는 마치 사람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는 듯 들렸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속담과 격언을 통해 삶의 교훈을 배워왔다. 그것은 세대를 건너며 살아남은 지혜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사람 또한 변한다. 그렇다면 고전의 말도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나는 사람이 고쳐 쓸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아니, 고쳐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돼, 나는 구제불능이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며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때가 있고, 애써도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없는 일에 끝없이 매달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게 맞는 일을 찾아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결국 변화는 절망을 자책으로 굳히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물론, 변화를 강요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타인의 충고나 사회적 압력만으로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진짜 변화는 어떤 강렬한 계기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돌파하고자 하는 절실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경험이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사람은 놀라울 만큼 다른 존재로 거듭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은퇴 후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에 자주 잠긴다. 주도적으로 살자고 늘 말했지만, 정작 내 행동은 상황에 질질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돌아보면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고쳐보기로 결심했다. 시간을 다르게 써보려 한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에 조금 더 색을 입히고 싶다. 환경도 바꿔볼 생각이다. 익숙한 틀을 깨고 낯선 자리에 서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감각은 새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려 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라나고, 새로운 인연은 종종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내 삶이 한 뼘이라도 더 아름다워진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사람을 고쳐 쓰는 일’이 아닐까. 고쳐 쓴다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자신으로 다듬어 가는 과정, 낡은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문을 여는 용기를 뜻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를 고쳐 쓰며 조금씩 성숙해지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나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