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서비스=공짜? 우리가 잊은 진짜 의미

by 박동환
인스타그램 게시물 - 서비스는 무료가 아니다 (1).jpg 서비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친구와 오랜만에 단골 식당을 찾았을 때였다.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신 사장님은 주문을 마치기도 전에 “오늘은 특별히 서비스로 안주 하나 드린다”며 접시를 상 위에 내려놓으셨다. 순간 기분이 우쭐해졌다. 뭔가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은 즐거움, ‘공짜’가 주는 짜릿함 때문일까. 하지만 곧 묘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서비스가 곧 공짜라는 뜻일까? 소설 속 대사에서도, 드라마 속 장면에서도 ‘서비스’라는 말은 흔히 ‘덤’, ‘무료 증정품’을 의미한다. 이미 일상 속에 너무 깊이 스며든 사용법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서비스를 다음 세 가지 뜻으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생산된 재화를 운반·배급하거나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것. 둘째, 개인적으로 남을 위하여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 그리고 셋째, 장사에서 값을 깎아 주거나 덤을 붙여 주는 행위.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서비스=공짜’는 세 번째 정의에 기반하고 있다. 언제부터 서비스가 공짜가 됐을까?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원래 서비스는 훨씬 더 넓은 개념, 곧 편의 제공과 봉사, 복무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외국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service는 봉사, 편익, 근무를 뜻하고, 프랑스어 service는 의무, 군복무, 공익사업, 스페인어 servicio는 봉사, 섬김, 시중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 언어에서도 ‘공짜’나 ‘덤’의 의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서비스는 라틴어 servus(노예)에서 출발했다. 노예가 주인에게 제공하는 노동과 시중이 곧 서비스였다. 시간이 흘러 제도가 발달하면서 국가는 국민에게 도로, 철도, 항만, 공항 같은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책임을 맡았고, 이를 ‘공공 서비스’라 불렀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공공 서비스는 결코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는 국민과 계약을 맺고 세금을 통해 대가를 받는다. 도로를 닦고, 전산망을 관리하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서비스에는 언제나 가격표가 붙어 있으며, 누군가는 반드시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


오늘날 서비스의 영역은 더욱 다채롭다. 행정, 복지, 의료, 교육, 문화, 환경 서비스 등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가 널리 펼쳐져 있다. 그러나 공통된 고민은 언제나 같다. 바로 재원이다. 무한한 샘물처럼 공짜로 쓸 수 있는 자원은 없다. 결국 국민 개개인, 혹은 소비자가 그 비용을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개인이 직접 땅을 파거나 도로를 닦아야 한다.


언어는 사회와 함께 변한다. 사회적 관습과 트렌드가 언어의 의미를 끌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일까? 언어는 물길과도 같다. 맑은 물이 흘러들면 강물은 투명해지지만, 탁한 물이 계속 들어오면 금세 오염된다. ‘서비스=공짜’라는 인식은 편리하고 달콤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를 가리워버린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는 서비스는 누군가의 땀과 시간, 비용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식당에서 내어주는 작은 접시 하나에도 식재료 값, 조리 시간, 일손의 수고가 녹아 있다. 병원에서 받는 진료, 학교에서의 수업, 행정 창구에서의 민원 처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노동과 헌신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서비스는 ‘공짜가 아닌 가치’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언어의 본래 의미를 왜곡할 뿐 아니라, 삶의 본질마저 흐릿하게 잃어버리게 된다. 진짜 서비스란 덤이 아니라, 타인의 노력과 비용이 얽힌 귀중한 결과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언어를 바로잡는 일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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