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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정 Sep 09. 2024

[1] 아침 6시에 눈 뜨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6시만 되면 눈을 뜬다. 이게 무슨 신체적 반란인가 싶을 정도. 마치 몸이 나에게 조용히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전에 없던 일이었다. 늘 7시 30분이 되어야 겨우 알람에 반응하던 내가, 이제는 아무 소리도 없는데 저절로 깨어난다. 그 시간에 깨어나도 딱히 뭘 할 수는 없다. 다시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는 순간부터, 얄궂게도 머릿속에 작은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원고 마감, 상사와의 어색했던 대화, 그리고 뒷목을 짓누르는 불쾌한 두통. 그 물고기들은 쉬지 않고 내 머릿속을 헤엄쳐 다닌다.


출판사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시간. 처음엔 그야말로 신선했다. 책을 만들고, 그 책이 세상으로 나가 독자들과 만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기쁘고도 설렜다. 하지만 그 감정은 길지 않았다. 몇 번의 마감과 몇 번의 수정 끝에 남는 건, 오직 지루한 반복일 뿐. 마감은 언제나 무겁고, 그 무게는 늘 중력처럼 내 목덜미에 머문다.


최근 몇 달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멈춰 있던 게 아닐까? 아니, 나 자신이 그 자리에 멈추어 있는 걸 알고도, 그걸 애써 모른 척해온 건 아닐까?

사무실도 다르지 않다. 늘 같은 사람들, 같은 회의, 같은 아이디어들이 떠돌고 다시 제안된다. 나는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대표는 내내 나를 쳐다봤지만, 그 눈빛에는 기대라기보다는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지?’ 하는 묵직한 질문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퇴근 후, 나는 혼자 술을 마시러 익숙한 골목을 걸었다. 작은 바에 들어갔을 때, 바텐더는 눈치라도 챈 듯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내가 주문한 맥주를 건넸을 뿐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상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주 작은 틈, 마치 벽에 난 금처럼 보이는 그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그 바람은 거칠었고, 나를 천천히 밀어내는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바람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바람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길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그 틈을 떠올리게 됐다. 사무실에서, 집에서, 버스 창문 너머로도. 그 틈은 점점 더 커졌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나는 그 틈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 바람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고, 그 안에서 나는 묘 안도감을 느꼈다.


이 길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 순간,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근처의 작은 공원. 평소엔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그곳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이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그 틈이 나를 다른 시간 속으로 빨아들이 위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결국 출판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특별한 명분은 없었다. 그냥 그 날 아침,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나오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계속해서 나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노트를 꺼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 이야기들은 아마도 그 틈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는 그 틈을 통해 들어온 바람을 내 글 속에 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6시에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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