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외로움

혼자여도 괜찮다는 말이 진심이 되기까지

by 재윤

추석이다.

난 혼자 있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명절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 명절은 자영업을 하던 부모님 탓에 늘 누나와 둘이 보냈다. 그땐 왜 우리만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 냄비 속엔 식은 국이 남아 있었고, TV 속 사람들은 다 함께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내겐 낯설었다.


학창 시절엔 누나는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났고, 나 역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도 늘 혼자였다. 명절이란 말만 들어도 괜히 마음이 쿡쿡 찔렸다. 그건 가족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채 떠도는 기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가족은 늘 내 곁에 없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잠깐이나마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웃던 순간도 있었고, 그 짧은 온기가 내 마음 어딘가엔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혼자 견디는 법을 일찍 배웠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해졌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외로움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의 나는 술을 마셨고, 취한 채로 그 시간을 버텼다. 잠깐의 취함이 위안이 되어주었지만, 이내 술이 깨고 또다시 아침이 오면 밀려오는 상실감과 불안감에 몸서리치게 힘겨워했다.


다만 시간이 이만큼 흘러보니, 그때의 몸서리침도 아련하게 느껴진다. 이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외롭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그저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 덜 슬프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무덤덤해진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를 특별히 한 건 없지만, 마흔세 번째 추석을 맞이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진 걸까. 외롭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내 삶도 이렇게 살아내다 보니 감정의 결이 무뎌지고, 익숙해진다. 결국 외로움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의 침묵을 깨우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고독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 안의 진짜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는 걸. 이제 명절의 풍경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다. 낯설지 않다. 여전히 사람들은 모여 웃고 떠들지만, 나는 그저 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지금 이 글을 쓴다.


언제인지 기억이 흐미하다. 날짜를 계산해보면 사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 글을 쓰는 게 여간 쉽지 않다. 간간이 토해내듯 글을 쓰지만, 오늘 나처럼 혼자 명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혹시 작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위로의 글을 건네 본다.


"혼자 앉아 슬퍼하지 마셔라."

"누구보다 빛나는 당신을 응원한다."


여기까지다.

지금까지 글쓰는 재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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