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자에게...

마음을 움직인 단 한 사람의 댓글

by 재윤

우린 나이를 한두 살 더 먹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 가지 능력이 생긴다. 구태여 ‘겸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메타인지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또렷해진다. 나는 이걸 너무 늦게 배웠다.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일까.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 가사처럼, 처음엔 나도 내가 빛나는 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그냥 수많은 반딧불 중 하나구나”를 깨닫게 되었고, 그때 느꼈던 상실감이 참 컸다. 아마 살아가는 존재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반딧불이가 그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면?


평생 자신을 별이라고 믿고,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삶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하면, 세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호기심이 세상을 발전시켜 왔지만,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조금은 편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르고 사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얼마 전 내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참 오랜만이다. 좋아요는 열 개? 많으면 스무 개까지 달린다. 신경 안 쓰는 척하지만, 사실 그런 응원 하나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조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그래서인지 관계에서 손해 보는 역할을 하고,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요즘 아니, 최근 들어 스스로 “불필요한 관계”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쨘 하고 생긴 능력이 아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쌓인 피로,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음들이 천천히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일 거다.


그래서일까. 지구 어딘가에서 나의 글을 읽고, 익명의 누군가가 남긴 그 한 줄의 응원이 요즘은 더 귀하게 느껴진다. 아무 대가도 없이,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남긴 문장들. 그 안에 담긴 격려와 따뜻함. 선함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댓글을 읽고 정성스레 답글을 남기며, 문득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외롭던 삶을 누군가에게 살짝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와 대화하고, 인정받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요즘 나는 인간관계를 조금씩 좁혀 가고 있다. 만나는 사람을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간다. 예전에는 “시골에 틀어박혀 조용히 사는 삶”이 꿈이었다면, 지금은 그 꿈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엔 세상과 멀어져야 편할 것 같아서 그 꿈을 꿨다면, 이젠 세상과 멀어져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내 중심을 만들고 싶어서 그 고요함을 꿈꾸는 것 같다.


결국, 나에게 글쓰기는 세상과 완전히 멀어지지 않게 해주는 ‘마지막 연결선’ 같은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은데, 또 누군가의 마음과 이어지고 싶다. 이 모순 같은 감정 속에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한 줄의 응원이 고맙고, 한 사람의 마음이 소중하고, 그 따뜻함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에.


나는 요즘 들어 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자주 생각한다. 세상과 멀어지고 싶어지다가도, 그 누군가의 짧은 한 줄이 나를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대신 내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단 한 사람에게, 그 사람의 하루에 작은 온기 하나 얹어주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결국 나는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도, 또 완전히 혼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어쩌면 글쓰기는 그런 나를 세상과 느슨하게 이어놓는 마지막 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지구 어딘가에서 내 글을 읽고 조용히 마음을 건네준 그 한 사람 덕분에 나는 다시 한 줄을 더 적었다. 그 마음이 고맙고, 그 온기가 소중해서. 그래서 나는 또 쓴다. 누군가의 마음이 닿는 그 순간, 나도 다시 살아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이 글을 나의 독자에게 바친다.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