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려는 순간, 이 질문을 던져봤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하루에 한 개, 혹은 이틀에 한 개씩 꾸준히 써온 글들.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이렇게 할 말이 많았나?'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할 말이 많아서라기보다는 '훈련'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꾸준함이 결국 실력을 만든다는 걸 알기에, 지루해도, 하기 싫어도, 글을 썼다.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쓰기도 했고, 때론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고민을 꺼내어 보기도 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속에 쌓인 여러 고민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마치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는 기분이다. 누구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쓴다. 그래서일까, 글을 마치고 나면 마음이 언제나 평온해진다. 마음에 얹힌 돌덩이가 조금씩 옆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 그리고 글을 마칠 때면 어김없이 작은 성취감이 따라온다. "오늘도 해냈구나." 억만금을 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정도는 있다. 그 정도면 꽤 괜찮지 않은가?
어린 시절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외롭고, 나만 바쁜 줄 알았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세상 누구나 각자의 전쟁을 치르며 살고 있다는 사실. 나약하고 보잘것없다고 느껴졌던 순간들도 있었고, 반대로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디뎠던 시간들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산다.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의미에 집착할수록 삶은 오히려 더 무거워지니까. 하지만,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사는 게 맞을까?'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이루고 싶은 것을 열망하며 사는 것. 듣기엔 멋지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상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넌 성공했니?"
"돈은 얼마나 벌었어?"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있니?"
그 질문들은 내 삶을 자꾸만 타인의 기준에 맞춰보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그게 중요한가?" 내 행복의 기준은 결국 나 자신이 정하는 것이라고, 매번 되뇐다. 하지만, 이 질문이 결코 가벼운 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흔들어대니까.
당신은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디까지 해봤는지 궁금하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노력이 정말 노력이라고 할 수 있었는지,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다. 우리는 종종 남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내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숨기고 있던 약점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에겐 10년 터울의 친구가 있다. 나보다 어리지만 가끔은 내게 인생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친구다. 얼마 전, 그 친구가 성인 ADHD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지만, 집중력이 떨어져 공부가 잘 안 된 다며 하소연을 했다.
"나 진짜 열심히 하는데 자꾸 산만해지고, 머릿속이 어지러워."
그 말을 들이니,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얼마나 스스로를 탓했을까. 얼마나 좌절했을까. 노력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그 답답함. 나도 안다. 그런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으니까. 무기력에 빠졌던 그 시간들, 몇 번이고 포기하려 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꼭 이룰 수 없는 꿈인 걸까?'
세상은 결과로만 사람을 평가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과정에 있는 거 아닐까?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정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옆에서 "그만해"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스스로가 "이제 됐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게 진짜 끝일 테니까.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게 가느냐가 아니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어."
물론 쉽게 와닿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에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했다. 세상엔 누구나 각자의 속도로 걷는 법. 때로는 느려도, 돌아가도 결국엔 도착할 수 있다. 마라톤을 뛰다 보면 중간에 숨이 차서 멈추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완주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뛸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인생은 마라톤이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넘어지기도 하고, 누구는 옆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중요한 건, 도착하는 것이다.
오늘도 글 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