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람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삶이 정돈되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커피 한 잔 하자고 말하는 일이 자칫 오해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정중하게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경청이 위대한 관계 기술이라고들 말하는 것일 테다.
아직 연습 중이지만, 요즘 나는 이 ‘경청’의 힘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문득 옛친구에게 매번 혼났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항상 뜨끔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김없이 날아오던 등짝 스매싱에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예전엔 말을 할 때 주어를 자주 빼먹고 이야기했다. 글을 쓰고, 책까지 낸 내가 그런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도 성격이 급해지면 가끔 실수를 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단점을 고친 도구는 책과 글쓰기였다. 물론 옛친구의 등짝 스매싱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한다. 사람은 한 번에 변하지 않는다. 연습을 통해 조금씩 더 완성되어 갈 뿐이다. 원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면 죽는 순간까지 배우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듭 말하지만, 스스로가 원한다면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자진해서 고백을 늘어놓는 이유는 경청의 힘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어서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는 게 아니다.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경청이 된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는 건 경청이 아니라 침묵이다.
“그러냐?”
“멋지네.”
“그래서?”
이런 짧은 추임새만으로도 상대는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 꺼내놓는다. 예전의 나라면 사람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혹은 내 속마음을 꺼내기 위해 술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술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가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나는 술을 끊었다. 매번 글에 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구독자분들께 한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의지가 약한 편이라 이렇게라도 떠들어야 부끄러운 줄 알고, 다시 그쪽으로 가지 않을 것 같아서다.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 한참을 경청하다 보면, 마지막에 늘 비슷한 말을 듣는다. 내 입으로 말하자니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해보겠다.
“재윤님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요즘 나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한 게 뭐라고 이런 소리를 듣는 건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돌이켜보면 한 건 별로 없다. 맞장구를 쳐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중간중간 환하게 웃어준 것뿐이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었다. 그게 전부다.
여기에는 남모를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오랫동안 치아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았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 양치질 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양치를 열심히 해도 이미 치아는 많이 상해 있었고, 교정 시기를 놓쳐 치아는 삐뚤어져 있었다. 웃을 때 치아가 부끄러워 입을 가리고 웃거나, 아예 웃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인상이 무뚝뚝하고 차갑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얼마 전에는 골프 코치가 “재윤님, 첫인상 진짜 무서웠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더라.
그런 내가 이제 교정을 마친다. 끝내 가지고 싶었던 가지런한 치아를 갖게 되었다. 빚을 갚고 돈이 생겼을 때, 내가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해준 선물이 바로 치아 교정이었다. 덕분에 웃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웃음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었다.
돌아보면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 같다’고 말해준 이유는 대단한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언하지 않고, 끼어들지 않고, 판단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들어준 태도.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얼굴이었을 뿐이다.
경청은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를 바꾸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을 줄이자 관계가 부드러워졌고, 웃기 시작하자 세상이 조금 덜 날카로워졌다.
나는 여전히 연습 중이다.
잘 듣는 사람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으로.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글쓰는 재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