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셋 키우면서도 밝은 엄마의 비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 육아를 한 날이면, 저녁 8시부터 피곤이 몰려온다. 애들이 일찍 자줬으면 좋겠는데, 애들은 엄마의 바람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더 각성되어 방방 뛴다. 8시 30분, 자라고 여러 번 말을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자 인내심이 그만 바닥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떼를 쓴다면, 머리가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여보,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남편은 내 말의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조용히 손에 분리수거 가방을 쥐어줬다. "그래? 그럼 나가서 분리수거 좀 하고 와", 육아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릴 때, 우리 집만의 루틴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는 거다. 분리수거를 핑계 삼아 잠시 머리 식히고 오라는 뜻에서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분리수거를 하고 오면, 눈앞엔 낮과 다른 저녁 놀이터 풍경이 보인다. 낮엔 3~6살 우리 애들 또래 친구들이 그 공간을 활보하고 있었는데, 해가 어수룩 진 저녁이 되니 중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 자리했다. 그네 옆에 가방을 수두룩 던져놓고, 긴 머리 휘날리며 깔깔 거리며 말이다.
분리수거 가방을 나무 옆에 숨겨두고, 아파트 단지를 자박자박 걷는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도 불어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인 것 같다. 가을바람맞으며, 걷다 보면 무거웠던 머리도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얼마쯤 걸었을까,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애들 다 자니깐, 이제 들어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애들을 어떻게 재웠냐로 시작된 통화는, 오늘 저녁 야식 메뉴를 정하며 끝이 났다. 올 때 맥주를 사 오라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 불 하나만 켜있고, 모든 방이 다 소등되어 있었다.
남편은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면서도, 다른 한 손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우리는 아이들보다 더 해사한 얼굴로 소리 없이 서로를 맞이했다. 놀이터의 낮과 밤의 풍경이 달랐던 것처럼, 우리 집 거실의 낮과 밤 풍경도 달라졌다. 아이들의 해가 진 자리에, 엄마 아빠의 휘황차게 밝은 달이 떠올랐다. 별처럼 반짝이는 맥주와 함께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미취학 아이 셋을 키운다고 하면, 엄마가 쉴 시간도 없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가 밝고, 우울하고의 차이는 아이의 수보다 남편의 성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가정적이면 아이가 셋이건, 넷이건 엄마의 표정이 밝고, 남편이 가부장적이면 아이가 하나여도 힘들다.
주위에서 '애 엄마로 안 보인다, 애가 셋인데 어쩜 이리 밝냐'는 칭찬을 받을 때면 남편이 떠오른다. 내가 밝게 지낼 수 있는 이유의 8할은 육아의 고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가정적인 남편 덕분이기 때문이다.
흔히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사랑보단 전우애로, 친구처럼 산다며 사랑의 정도를 낮춰 말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부부에게 있어 전우애보다 더 강력한 사랑의 형태가 있을까 싶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가 아닌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육아를 비롯해 결혼생활의 모든 힘든 과정을 덜 힘들게, 즐겁게 느끼게 해 주니 말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엄마의 행복은 아빠에게 달려있었다. 삼남매 육아가 그리 힘들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 그리고 애를 셋씩이나 낳아도 여전히 밝은 엄마의 비결은 다정한 아빠이자, 가정적인 남편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