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안 보내니 엄마가 선생이 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영어유치원은 돈 많은 일부 소수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 허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낮았다. 내 친구네도, 남편의 친구네도, 남편의 회사 동료도 모두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다. 그들의 수익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 국회에서 영어유치원 금지법이 발의 됐다고 한다. 만약 통과되면 영유아 영어 학습 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거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말리는 정도까지 온 거라면, 대체 그곳을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유치원의 ㅇ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4세부터 입시 경쟁인 현시대에 우리 애들도 포함되었다고 생각되니 조급함과 불안함이 밀려왔다.
눈 가리고, 귀 닫고, '너무 앞선 선행 교육이 아이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지' 속으로 아무리 아미타불 염불을 외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적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앞서 공부를 한다면, 그 속도가 바로 적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서 뭐라도 해줘야겠다는 싶었다. 이렇게 손 놓고 걱정만 한다고, 해결될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 입장에서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는 게 정신 건강에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 내가 돈이 없지, 교육열이 없나!
영어유치원을 대신해 찾은 대안이 바로 '엄마표 영어'였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부모가 제 자식 못 가르친다고 하지만, 일단은 해볼 수 있는 데까진 해보기로 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엄마표 영어책을 다 사봤다. 잠수네, 새벽달, 현서아빠 등 엄마표 영어를 알아봤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거장들의 책부터, 주위에서 괜찮다고 하는 책까지 다 섭렵했다.
책의 표지와 내용 구성은 각기 달랐지만, 엄마표 영어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줄기는 모두 같았다. 흘려듣기, 집중 듣기, 영어책 읽기. 즉, 엄마표 영어의 핵심은 일상에서 아이들이 영어노출이 계속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였다.
매일 영어 영상 보여주고, 음악 틀어주는 거니 쉬울 거라 생각했다. 쿠팡에서 CD플레이어를 사고, 당근에서 영어책 50권을 5만 원에 구매할 때만 해도, '한 번 세팅만 잘해놓으면 1타 3피의 효과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일상의 루틴으로 정착시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책에서 추천하는 영어 만화를 보여주자 한글 만화를 틀어달라고 하고, 기상송으로 영어 음원을 틀어주자, 시끄럽다고 끄라는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열정은 아이들의 반발에 부딪쳐 하루하루 차게 식었다. 그렇게 나의 첫 엄마표 영어 도전기는 1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이 났다.
'어떻게 하면, 엄마표 영어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란 고민 끝에 '엄마표 영어 인증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매주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그 주제와 관련된 영상을 매일 1시간씩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영어책 3권씩 읽고 인증하는 커뮤니티였다. 함께의 힘은 대단했다. 혼자였으면 금방 포기했을 일도, 함께라서 버틸 수 있었다. 역시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아이들과 엄마표 영어를 진행한 지 6개월이 다 돼 간다. 6개월 간 우리 집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루 한 시간 영어 만화 보기, 하루 3권 영어책 읽기가 루틴으로 자리 잡혔고, 매일 영어를 접하다 보니 아이들이 영어를 듣고 말하는 걸 친숙히 생각했다.
5살 큰딸은 자신이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한다며, 매일 나와 남편에게 "지렁이가 영어로 뭔지 알아?", "애벌레가 영어로 뭔지 알아?" 하며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똑똑이가 됐다. 그리고 3살 둘째는 언니 따라 영어 노래를 듣다 보니 "트윙클~트윙클~리를 스타~"하며 '작은 별' 동요를 영어로 부르고, "아빠 핑거 아빠 핑거 웨어아유~하두유하두유~"노래하며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한다. "엄마와 영어 하는 거 재밌어?"라는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재밌어!"라고 말하는 첫째의 반짝이는 눈망울에서 희망 그 이상의 것을 본다.
처음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우리 아이들이 또래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어를 진심으로 즐기는 아이들 모습에서, 영어를 단순히 입시 과목의 하나로만 생각했던 지난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영어는 과목이 아닌 소통의 도구였다.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닌, 더 넓은 세상을 무대로 삼기 위한 소양이었다. 아이들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그러려면 나부터 영어에 대한 편견을 걷어야겠다.
얘들아, 엄마랑 영어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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