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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16. 2023

너희 집은 어디니? 자가니, 전세니?

집이 있다고 하니, 회사 사람들이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사회생활을 갓 시작할 때 출신대학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출신대학에 따라 급을 나눴다. 4년제 졸인 지, 전문대 졸인 지에 따라 승진체계도 달랐다. 전문대 출신 직원들은 10년 이상 근무해야 4년제 신입사원 초봉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금은 신규직원들에게 대학을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 집의 소유여부를 궁금해한다.


어디에 사는지, 주거형태는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그리고 자가인지를 묻고, 사는 지역과 자가여부로 급을 나눈다. 서울에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고 있다면 게임오버, 그 구역 짱이 된다.


서울 아파트를 자가로 보유하고 있는 KING마리오


바야흐로 집이 신분인 시대다.


나는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 그리고 25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몸테크하며 재산을 불렸다. 30대 초반인 지금 서울과 경기도에 총 6채의 집이 있다. 부모님 도움 없이 순전히 우리가 이룬 결과물이다.


1년 전 새로운 부서로 인사이동이 났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신규 직원이었던 나의 집 소유여부를 궁금해했다. 과장님은 팀원들에게 한 명씩 돌아가며 집에 대해 물었다.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지금 사는 곳은 월세로 살고 있는데, 월세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시하고, 그렇다고 집이 여러 개라고 하면 재수 없게 생각하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월세에 산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얼떨결에 "집은 따로 있고, 지금은 월세로 살아요"라고 답했다. 있는 척을 경계하자고 늘 다짐하는 데도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나 보다. 없어 보이는 것보단 있어 보이는 게 낫겠지 싶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집이 어디에 있냐길래, 여기저기 있다며 얼버무렸다. 과장님은 집요하게 질문하셨고, 나는 결국 부밍아웃을 했다. "총 6채가 있어요"


회사에 집 개수까지 밝힌 건 처음이었다. 회사에 집이 많다고 밝히면 '언젠간 회사를 떠날 사람, 회사일에 소홀히 할 직원'으로 인식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투자머리를 일머리로 봐줬다. 집이 있다고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 업무능력까지 높이 평가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답답하다던 상사는 갑자기 나를 대단한 녀석이라 치켜세웠고, 동료들은 내게 관심을 보였다.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고, 부동산 관련 상담을 부탁했다. 전과 달라진 위상에 얼떨떨함을 느꼈다. 순간의 부밍아웃으로 아싸에서 인싸가 됐다.


집이 이렇게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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