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승과 제자는 함께 걷는다.

한 걸음의 가르침, 한 걸음의 배움

by 너울

17년 동안 요양보호사 양성 강사로 일해 왔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제자들을 만났고, 또 떠나보냈다. 계산해 보니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과 교실에서 마주한 셈이다.


늘 강의실 앞자리에 서서 '가르친다'는 자세로 있었지만, 사실 그 속에서 자란 건 나였다.


오늘 아침, 별다를 것 없을 거라 생각하며 교실 문을 열었는데, 칠판에는 노래 가사가 적혀 있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익숙한 선율이 울리는 순간, 제자들이 합창으로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인데 시간표에서 내 강의가 없는 날인 걸 알고 미리 이벤트를 준비해 주신 참사랑요양보호사 교육원 158기 제자샘들이다.


작은 몸짓들이 어찌나 깊게 울리는지, 마음 한편이 뜨겁게 차올랐다. 158기 제자샘들의 손길이 담긴 카네이션과 선물도 건네받았다. 그런데 선물보다 더 벅찼던 건 그 순간 교실에 흐르던 ‘마음’이었다.


‘가르치면서 배웠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에세이의 제목이다. 오랜 고민 끝에 붙인 제목인데, 오늘만큼 이 말이 더 절실하고 분명하게 와닿은 날은 없었다.


나는 제자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하려 했지만, 이들은 내 삶에 다정한 질문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내가 잊고 살던 초심을 불러내는 대답이 되어주었다.


삶을 마주하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온도, 관계를 엮는 언어 하나하나가 수업 안팎에서 쌓여갔다. 결국 제자들이 나를 더 좋은 스승으로,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유독 ‘길벗’이라는 단어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늘 내가 앞에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함께 걷는 제자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관계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그 이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고, 때로는 손을 내밀고, 질문이 되고 대답이 되는 다정한 동행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무언가를 받아서 감동한 게 아니다. 제자들이 나를 스승으로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더 감동적인 건, 그 기억의 끝에 내가 남겨두었던 마음과 태도가 여전히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강단에 선다는 마음을 나누는 일임을 나는 오늘 다시 배웠다. 내 인생이 이토록 아름다워질 수 있었던 건, 결국 나 혼자 걸어온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오래도록 소중히 지켜야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삶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 이 길을 함께 걸었던 따뜻한 시간을 제자들이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처럼 서로 마주할 수 없어도, 그 기억이 그들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나 또한 그들에게 오래도록 다정한 거울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에세이 작가의 행복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