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의 반복이 가르쳐준 것

by 너울

오늘 아침 출근길, 고명환 작가님의 영상에서 한 마디가 귓가에 머물렀습니다.


“계란말이를 1,000번 하면, 무엇이라도 되겠지요.”

단순한 비유 같지만, 그 속에는 과정을 견뎌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묵직한 고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1,000번이라는 숫자. 1년 365일 매일 거르지 않고 반복해도 족히 3년은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 숫자는 단순히 ‘익숙함’을 넘어, 한 존재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임계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나는 무엇을 1,000번 넘게 해왔을까?’


제 삶의 궤적 안에는 독서, 글쓰기, 그리고 강의라는 세 가지 줄기가 굵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7년이라는 강사의 시간, 매일같이 읽고 써 내려간 기록들이 어느덧 그 숫자를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나긴 반복의 터널 끝에서 제가 얻은 것은 단순히 ‘능숙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1,000번이 넘는 강의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처음'의 시간들입니다. 27살, 앳된 얼굴의 간호사가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저를 맞이한 건 50~60대 교육생분들의 서늘한 시선이었습니다. 팔짱을 낀 채 '네가 우리를 가르친다고?'라며 지켜보던 어른들의 눈빛은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수백 번, 수천 번 마이크를 잡으며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나이 숫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경험 숫자'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나이의 많고 적음보다 그 분야에서 겪어낸 밀도 있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순간, 더 이상 앞자리에 앉은 어른들의 시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1,000번의 반복이 제게 준 첫 번째 선물은, 어떤 대상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경험의 권위'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제가 ‘손익계산에 능통하지 못한 사람’ 이었기 때문입니다.


외부 강의 의뢰가 들어올 때, 저는 단 한 번도 강의료가 얼마인지를 먼저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1시간의 강의를 위해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를 기꺼이 달려갔고,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이러닝 콘텐츠를 개발할 때도 '시간당 얼마를 받느냐'는 주변의 걱정 섞인 말에 귀 닫았습니다.


만약 매 순간 "이게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될까?"를 계산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었다면, 아마 1,000번이라는 숫자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지쳐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로 계산하는 대신 몸으로 부딪혔고,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그저 다음 날의 한 번을 채웠습니다. 손익계산에 서툴렀던 그 우직함이, 오히려 저를 계산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자유’라는 목적지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이제 제게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1,000번의 시도를 해본 사람은 압니다. 일단 시작하면, 그 끝에는 반드시 ‘무엇이라도 되어 있는 나’를 만날 것이라는 확신을요.


몇 번으로 포기하거나 실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직 1,000번을 못 채웠는데 결과물이 보인다면 더 감사해야 할 일이지 실망할 일이 결코 아니니까요.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면, 그저 오늘 하루의 한 번을 정성껏 채우면 됩니다. 1,000번의 반복 끝에 남는 진실은 ‘성공’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어떤 시련 앞에서도 다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단단한 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반복 숫자를 더하기 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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