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문을 닫는 순간, 나는 다시 'I'가 된다

by 너울

외향인(E)의 탈을 쓴 내향인(I) 강사의 생존 전략


프리랜서 강사가 되면 소속되어 있을 때보다 분명 좋은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누리기 전, 반드시 갖춰야 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세상에 100% 좋은 것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상황이 어떠하든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단계에 오기까지, 꽤 긴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저의 현재 상황을 말하자면, 일단 ‘소속’은 있습니다. 하는 일은 프리(Free)하지만 소속까지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이는 제 삶의 한 켠에 보험을 들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의 양과 상관없이, 고정적인 수입만으로도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는 안전한 울타리를 만든 것이죠.


보상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런 보험이 있기에 저는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마주하는 도전 앞에서 제가 키워야 했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적응력’과 ‘융통성’ 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람 만나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MBTI는 늘 저를 E(외향형)로 분류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를 I(내향형)라고 정의합니다. 생각(나는 내향형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따라 행동이 바뀌어 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 중 하나겠지요.


한 주제로 한 곳에만 소속된 강사일 때보다, 여러 주제로 다양한 곳을 찾아다니는 지금,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이전보다 수십 배로 늘어났습니다. 강의장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순간, 저는 온전한 ‘E’가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 강의니까요.


하지만 강의장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저는 철저하게 ‘I’를 택합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성격 탓에 저를 한 번에 파악하는 사람은 적어졌고, 오히려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편해지고자 선택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게는 익숙한 곳보다 새로운 강의장이 훨씬 많아졌고, 만나는 사람들도 처음 보는 이들로 채워집니다. 그때마다 제가 가방에서 꺼내 드는 것은 다시 한번, ‘적응력’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곳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업무적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줄 압니다. ‘업무적 친절’에 어느덧 적응이 된 셈이죠. 이런 제 모습이 싫지는 않습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날 인연들에게 저는 꽤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고, 기본적인 에티켓만으로도 업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만약 관계가 이어진다면, 저는 그때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에티켓을 넘어 조금은 사적인 매너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때도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신중해진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거든요.


강의 전 대기실이나 낯선 환경에서도 저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든 놓여 있는 PC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며 제 할 일을 합니다. 어색함 때문에 주변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오로지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강의장 안팎에서 극단을 오가는 저의 모습은 변덕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심을 잡기 위한 나만의 ‘무게중심 이동’ 입니다. 환경에 맞춰 나를 변화시키는 적응력과, 본연의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거리두기. 이 두 가지가 공존할 때, 저는 비로소 낯선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온전한 나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낯선 강의장 문을 닫고 나올 때 느껴지는 그 서늘한 평온함. 그 'I'의 시간 덕분에 저는 다음 강의에서 다시 뜨거운 'E'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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