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이 0.8명을 낳는다는 저 출산 국가,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지표에서 머물러 있는 숫자가 아니다. 이 숫자는 지극히 역동적이다. 어느 누구든 마주해야 할 상황이 노인이고 곧 나도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년과 관련된 강의를 하는 나에게도 이 과제는 영원히 풀어가야 할 내용처럼 묵직함을 던져준다. 물론 나 같은 개인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포기는 하지 않는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교육을 하는 강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던져주는 일이다. ‘저출산 초고령화’ 단어를 읽어가며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재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답은 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방향대로 답이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때론 침묵을 하는 분들도 있다. 잠시의 침묵에 동참한 후 나의 생각을 말해본다.
오래 사는 것은 축복 맞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이 어제 모두 임종을 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겠죠. 그렇다면 오늘까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경험”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해 볼 수 있는 것이 많아질 테니까요. 그러니 오늘도 받은 선물에 감사하며 어떻게 이 선물을 마주해야 할지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임과 동시에 젊은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도 알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펼쳐질 새로운 미래와 성장의 기회를 기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람, 직장이나 학교, 장소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충분히 인정하며 지나간 일들에 감사하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감사와 애도가 그를 비워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한다.
<나는 나> 류시화 지음
아침 독서에서 만난 류시화 작가님 책의 한 구절이 내가 강의했던 이야기를 더 빛나게 만들어 주셨다. 경험은 새로운 만남이다. 그러나 영원한 만남도 없다.
만남 뒤에는 언제나 이별이 찾아오기 마련이며,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두 가지 역시 만남과 이별이다. 이 두 가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만남에 대한 환대와 이별에 대한 애도뿐이다.
나에게 와준 귀한 만남에게는 최선을 다해 반기며 기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경험은 기회를 통해서 얻어간다. 사소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아주 먼 훗날 이 시간을 통해 조금은 더 나은 나와 마주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바탕이 되면 된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주어진 시간과 동행하면 된다. 오로지 동행하는 순간만 즐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이별에 미리 겁을 먹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정하는 때가 아니라 그 만남이 해야 할 일을 다 하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이별 일 테니까.
그저 그때가 왔다면 애도라는 글자를 꺼낼 준비를 하면 된다. 충분히 떠나보내줄 수 있을 만큼의 눈물은 흘려야 된다. 구태여 참아내며 밀도를 키우는 눈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흘러야 씻긴다. 부드러워야 씻긴다. 단단하게 굳어진 밀도를 담은 눈물은 씻겨내기 힘들어진다.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에 대한 아쉬움
더는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에 대한 아련함
더는 느낄 수 없는 그 모든 감정들
“더”가 만들어주는 모든 순간들과 다시 한번 진실로 마주할 수 있는 때가 애도이다. 한 번의 찐한 애도로 씻겨낼 수야 없겠지만 몇 번 반복이 되면 반드시 씻겨진다.
이 과정을 통해 빈 공간이 만들어져야 새로운 경험도 담아갈 수 있다.
나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 과정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 나도 애도가 덜 된 내 과거의 시간들이 남아 있을까?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하며 난 그 시간을 만나는 축복과 함께 했었다.
한 페이지를 쓸 때마다 쏟아냈던 눈물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자체만으로도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애도와 끊임없이 만날게 될 것을 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조금은 진지하고 솔직한 애도를 할 수 있다면 나이 들어감이 재앙처럼 다가오진 않을 것 같다.
용기를 내어보는 사람만이 큰 소리로 외치게 될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나이 들어 감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