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쉽지 않다.
<유구유언> 글쓰기에 관해, 먼저 메일로 이 글을 보냈던 친구 장진성(가명)과 대화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진성: 잘 보고 있어. 재미도 있고, 좋아.
간단한 말이지만, 그 친구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한 칭찬과 격려로 다가왔다.
태승: 고마워.
진성: 상현(가명)에게 보여 줘 봐! 혹, 도움 되는 말을 들을 수도 있잖아.
나와 장진성 그리고 김상현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김상현은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본인 말로는 꽤 글을 쓴다는 친구다.
태승: 그럴까!
얼마 후, 상현에게 전화로 안부와 상황을 말하고, 이메일로 그동안 쓴 글 일부를 보냈다. 글에 대해 ‘조언’과 전화 줄 걸 부탁하며.
상현에게 보낸 이메일을 2시간 후쯤 확인했다. 고맙게도(?) 내가 보내자마자, 글을 읽은 게 나타났다. 전화는 없었다. 다시 내가 전화했다.
태승: 읽었어?!
상현: 응.
태승: 그래. 어땠어?
상현:---(말 없음)---
태승: 왜 말이 없어?
상현: 무슨 말을 해.
태승: 무슨 말이라니? 작가로서 ‘조언’을 달라고 했잖아!
상현: ---(잠시 말 없음). ‘조언’?! ‘조언’할 게 뭐가 있어.
태승: 그래도~! 읽었으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 줘야지~. 이렇든 저렇든.
상현: 태승아, 네가 정 그러니까 내가 한마디 할게. 지금 우리 나이가 환갑이잖니?! 그러니, 이런 내용 말고, ‘인생, 죽음’ 뭐 이런 걸 써야 하는 거 아냐! 가벼운 내용 말고!
이때부터 旣視感(기시감-데자뷔)이라고 해야 할까, 언제 어디서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태승: 인생, 죽음?!
상현: 응. 인생, 죽음!
태승: 그런 건 내게 어려우니, 네가 써! 난 능력도 안 되고, 잘 몰라!
상현: 난, 법정 스님 책, 약 30권 정도를 다 읽었어. ‘인생, 죽음’ 이런 글을 써야지!
태승: 그래, 그런 건 네가 써~. 난, 능력이 되질 않아.
상현: 그리고 네가, 정말 내게 ‘조언’을 듣고 싶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너 ‘맞춤법’은 비교적 정확하더라. 요즘 글 쓴다고 하는 사람들, 영 ‘맞춤법’이 엉터리야.
태승: ‘맞춤법’?!
상현: 응. ‘맞춤법’.
태승:---(잠시 할 말 잃음)---. 고마워, 잘 지내. (맞춤법을 비교적 정확히 사용한다는 칭찬이 내게 씁쓸한 느낌으로 다가온 건 왜일까?!)
2022년 5월 19일, 상현과 나눴던 대화를 상세히 적었다. 이 대화를 끝내고 아주 오래전, 언제 한 번 겪어봤었던 거 같은 기억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뒤섞여,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기분이 좋아 웃는 게 결코 아닌.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주 오래 웃었다. 과장한다면, 육십 평생에 이렇게 호탕하게 웃어본 기억이 없다. 누가 봤었다면, 실성한 사람인 줄 알았을 거다.
약 22년 전의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 동창 이규찬(가명)에게 일과 관련하여, 그때 당시 약 일억원 상당의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 나는 규찬을 신뢰했지만, 규찬은 일방적으로 배신했다. 금전적 피해도 피해지만, 신뢰했던 인간관계에서의 아픔은 엄청나게 컸다. 이 일로 마음이 아주 아팠던 즈음에, 김상현과 만났다. 당시, 김상현은 나와 그리고 규찬과 같은 업종에 있었다.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면,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리라 믿었다. 나름 김상현에게 ‘위로’도 받고자 만난 거다.
태승: ---(이래저래서,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고), 속이 많이 상해---.
상현: (듣자마자, 한마디의 위로도 없이, 단호하게) 야, 네가 잘못한 건 없니?! 너도 잘못이 있을 거 같은데?!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인생이 그렇구나! 위로를 받으려고 했던 내가 잘못이구나! 사람들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가 인생을 몰랐구나! 나는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배신’을 당한 건데. 그 후론, 이 ‘배신’의 실체와 아픔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이 경험에서 배운 교훈은 내 인생 지침 중 하나가 되었다.
김상현을 통해 많은 걸 깨달았다. 고맙다, 친구야!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네게 간략히 글을 쓸게. 너를 향한 친구의 진심 어린 권유로 받길 바란다.
[상현아!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니?! ‘共感(공감)’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남의 생각이나 의견, 감정 등에 대하여) 자기도 그러하다고 느낌, 또는 그런 감정.”이라고 쓰여있단다. 내가 네게 22년 전, 규찬이가 내게 행한 배신을 말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유구유언>에 대해 네게 무슨 조언을 듣고 싶어 했겠니?!
상현아. 규찬이가 내게 행한 배신에 대해, 네게 복수해 달라고 했니?! 아니면, 이 글을 쓰는데, 무슨 엄청난 조언을 해 달라고 했니?! 이 글의 취지(?)를 네게 자세히 설명했잖니?! 그리고 약 3년 전에 내가 말했잖니! 네게 처음으로 말이다. 22년 전, 규찬이의 ‘배신 사건’에 대해서 말이다. ‘(22년 전) 당시, 네가 내게 단호하게 한 말에 대해 좀 섭섭했노라고. 단지 나는 네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라고.’
상현아, 나는 그냥 네게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속상하겠다. 나도 속상하다. 어떡하냐!’ 그리고 내가 보낸 글에 대해서도 ‘야, 좋다. 괜찮다. 친구 이야기 나오니 재밌네~!’. 설령, 네가 전혀 속상하지 않았고, 전혀 재밌지 않아도 말이야.
상현아, 넌 내 이런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무슨 말로 나를 놀라게 할는지, 어떤 교훈을 줄는지 무척 궁금하구나. 이번에도 인생 지침이 될 만한 ‘엄청난 거, 한 방’ 기대해도 되겠니?! 인생과 죽음에 관해선 네게 배워야 할 거 같아서 그래!
살짝 냉소적으로 들린다면, 이해해주길 바란다. 기시감인지, 이게 뭔지, 언제 어디서 경험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그래. 뼈 아프게 말이야.
상현아. 네 말대로 우리 환갑이잖니! 너나 나나 그동안 자신 일만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았잖니! 이젠 좀 더 타인과 공감하는 삶을 살면 어떻겠니! 다른 사람과 함께, 기쁠 땐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땐 함께 울고! 어때, 그렇게 남은 인생 살아보지 않겠니! 공감하는 삶, 말이다. 행복하게 잘 지내길.]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걸 생각했다. 시작은 조심스러웠다. 자칫, 상현의 마음을 아프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꼭 써야만 될’ 거 같았다. 悠久遺言(유구유언)이라면. 상현에게 내 이런 마음을 진솔하게 전하기 원한다면. 상현을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 오른다. 친구 관계도 그런가! 멀리서 데면데면하게 지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속마음까지도 나누면 비극이 될까?! 속마음까지도 나누려 한 내게, 비극으로 결말난 규찬 ‘배신’ 사건도, 그래서?!
인생, 참 쉽지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