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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승 Sep 28. 2022

잠, 밥 그리고 친구.

-옛 기억이 추억으로 아련히 떠오르는, 공지천의 행복한 밤.

춘천에서 6월29일부터 7월5일까지 <2022 춘천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가 있었다. 매년 개최되는 대회가,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당해 대회에 참가하는 각국의 선수, 임원, 심판 등 관계자에 대한 숙박, 교통, 관광 제반 분야를 총괄하는 대행사 대표가 친구(김화0)다.      


김화0은 여러 면에서 자랑스러운 아주 오래된 친구다. 김화0에 대해 자랑하려면 끝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1박2일 정도면(?) 끝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주인공은 김화0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주인공은 이태승이다.      


김화0의 초대를 받아서, 또 다른 친구(정연0)와 2박3일 일정으로 춘천을 다녀왔다. 2019년 대회 때에도 다녀왔지만, 이번 대회가 더욱 기쁘고 즐거웠다.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성사되지 못했다가, 코로나19가 점차 수그러들 즈음인 지금, 대회가 정상적으로 재개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김화0의 경제적 여건도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악영향을 받았었다. 이런 와중에 열린 대회이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춘천에 얽힌 잠과 밥 그리고 친구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한다. 난, 잠에 약하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온종일 힘들어한다. 여태까지 어떤 것도 밤을 꼬박 새워 해보질 않았다. 학창 시절 아무리 중요한 시험이라도, 마찬가지다. 학원 운영할 때, 엄청난 고민이 있었을 때는 밤을 새운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아침에 잠자리에 들어서 오후에 출근했었다.      


이번 만남을 통해 기억을 더듬으면서 옛이야기를 나눴다. 1982년 겨울, 춘천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화0을 비롯한 친구 5명이 군 복무 중인 정연0 면회 갈 때다. 돈을 아끼기 위해 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친구들과 노느라고 그랬는지, 어땠는지 사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른 아침에 친구 일행 모두가 춘천역 근처를 걸었다. 근데, 난 유독 졸려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붙잡고 김영0이 함께 걸었다. ‘야, 정신차려!’하면서. 아마 김영0은 무척 힘들었을 거다. 김영0이 아니었다면, 자칫 길거리에서 쓰러져 잘 뻔했던 아득한 기억이 있다.      


주절주절은 이어진다. 난, 배고픔도 참지 못한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집에서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가족 모두가 금식기도를 한다. 그 해도 마찬가지로 금식기도를 했다. 오전은 꾹 참고 넘겼으나, 점심 이후로는 도저히 배고파서 참을 수 없었다. ‘난,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밥을 먹었다. 내 머릿속에 하나님은 조금도 없었다. 배고파서, 배고파서, 배고파서---.     


다시 춘천, 1982년 겨울이다. 정연0 면회를 마치고 집(인천)으로 돌아갈 때다. 오후 두세 시경으로 기억한다. 남춘천역이었다. 열차 타고 청량리역까지 간 후에, 청량리역에서 전철로 갈아타 동암역까지 그리고 동암역에서 버스로 구월동까지가 귀가 일정이었다. 약 5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교통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은 갹출하여 대표가 갖고 있었다. 귀가 일정이었으니, 귀가 교통비만 남기고 나머지 비용은 이미 다 사용했다. 식사는 아침에 먹은 거로 끝이었다.     


아뿔싸! 점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돈은 없고 배는 고프고, 갈 길은 멀고 춥기는 하고. 옆에 친구들 일행만 없었다면, 딱 알맞은 거지 신세였다. 배 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는 더 정신을 혼미 캐 했다. 결단할 중대한 시점이 왔다. 대표에게 말했다. ‘내 차비 줘. 난 배고파서 도저히 집까지 못 가.’ 친구들의 반응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안 된다는 거였다.      


그까짓 거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도 느껴졌다. 면회 갈 때는 졸음을, 집에 갈 때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놈)을 친구로 둔 걸 후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다음은 여러분이 예상하는 그대로다. 난, 내 기차비를 받아서 남춘천역 앞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파 송송, 계란 탁’한 라면이었다. 배고프면 하나님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인데, 그럼 어쩌란 말인가 배고파 죽겠는데, 먼저 살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먹었던 라면 중, 맛이 최고였음은 말해 무엇하랴!     


기차비가 없는데 집에까지는 어떻게 왔을까. 이거 역시 여러분이 예상하는 그대로다. ‘열차 훔쳐 타기’다. 기차표를 사지 않고, 열차표 검사원을 요리조리 피해서, 심장은 두근두근하면서, 이 칸 저 칸 옮겨 다니면서---. 연배가 어느 정도 이상인 사람은 모두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남춘천 驛舍(역사) 앞에서 있었던, 이태승 배고팠던 歷史(역사)다.      


배고픈 거 참지 못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금식기도 못 한다. 하나님도 나를 특별히 인정해주실 거로 믿는다. 배고프면 하나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짜증을 내고 힘들어하니 하나님도 어떻게 그 험한 꼴을 보고 견딜 수가 있으랴! 당신 자식이 배고파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꼭 금식기도를 하며 간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자녀가 필요한 거는 이미 다 아시고 챙겨주신다고 믿는 게, 그게 내 믿음 수준인걸, 어쩌나!     


무슨 말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이거다. 2022년 7월 3일과 그다음 날, 이틀에 걸쳐 김화0, 정연0, 이태승 세 명이 춘천에서 맛있는 음식 먹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았다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 말이다. 세 명이 고민 끝에, 택시 타고 맛있는 저녁 음식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오른쪽 옆에 남춘천 驛舍(역사)가 보였다. 40년 전, 작았던 역사가 지금은 거대한 역사로 바뀌어 있었다. 뇌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땐 돈이 없어서 ‘열차 비용으로 라면을 사 먹어야 하는지 마는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먹어야 맛있는 거 먹었다고 소문날까’를 고민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40년 전의 歷史(역사), 라면에 얽힌 역사, 친구들과 함께한 소중한 역사의 단편이다. 작았던 역사가 거대한 역사가 된 거다. 이틀에 걸쳐 춘천닭갈비, 삼겹살, 주꾸미볶음 그리고 호텔 뷔페를 먹었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 음식 맛이 40년 전의 남춘천 역사 앞의 라면 맛을 쫓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면, 너무 뻔한 修辭(수사)일까.      


공지천을 마주하는, 2022년 현재는 춘천에서 가장 고급 호텔인 JACKSON9 최상급 객실에서 잠자고, 그 호텔 뷔페식사를 하고,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돈 없어서 길거리에서 잠을 잘 뻔했던 사람이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돈 없어서 열차 비용으로 라면을 사 먹었던 사람이, 최고급 호텔 뷔페식사와 그리고 춘천에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사 먹다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겠는가. 이게 모두 VIP인 김화0을 친구로 둔 덕분이다. 이런 훌륭한 사람을 친구로 가진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 참, 결코 빼서 안 될 친구가 또 있다. 춘천에서, 잠에 취해서 헉헉거리던 나를 길거리에 버려두지 않고, 힘들면서도 기꺼이 나를 끝끝내 부축해줬던 영원한 리더 (의리의리) 김영0이다. 김영0이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의 이태승은 공지천 다리 밑에서 헤매면서 생활하고 있었을 거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공지천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공지천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고 사랑을 약속하던 곳, 그 옛날 공지천 공지천’. (‘목화밭’ 가사 개사)      


춘천에 있는 대학교에서 만난 첫사랑과 결혼한, 캠퍼스 커플 (친구 김영0과 고향이 춘천인 그의 아내 박미0씨)도 생각나는 밤이다. 그때 우리 친구들이 (김영0과 박미0) 연인을 부러워하며, 함께 자주 불렀던 ‘공지천’ 노래도 그때를 생각하며 호텔 객실에서 나지막이 불렀다.      


삼십여 년 전, 김영0과 박미0씨가 결혼식을 했던 강원예식장이 없어지고, 바로 그 자리에 새롭게 세워진 JACKSON9 호텔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아닌, 7.4 정연0 禁煙聲明(금연성명) 기쁜 소식은 별개로 하더라도. 김화0, 정연0 그리고 이태승 셋이서.     


저녁 잠깐 억수 같이 내렸던 비가 멈추고, 비안개인지 운무인지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흐릿한 밤하늘과, 그 아래 길옆으로는 1968년에 개업했다는 변함없는 카페 이디오피아와 그리고 더 아래로는 여전히 분위기 만점인 공지천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함께 부르는 ‘공지천’ 노래란!!!. 옛 기억이 추억으로 아련히 떠오르는, 정말 행복한 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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