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05화

똥 이야기.

내겐 너무나 소중한 똥.

by 이태승

1. 똥 ‘일’.

-내게 이런 의미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송현동에서 구월동 독점(마을 이름)으로 초등학교 2학년(1970년) 겨울방학 때 이사 왔다. 말이 이사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쫓겨난 거다. 초가집 안채에 딸린 뒷방이었다. 방 하나에 다섯 명의 식구가 살았다.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는 아궁이 딸린 조그만 방이다.


현재는 인천시청사가 구월동에 있다. 과수원이 많았던 독점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당시 마을 이름이 주막거리와 붉은고개 중간쯤에 인천시청사가 새롭게 들어선 거다. 주막거리와 붉은고개는 야산과 논, 밭 그리고 공터뿐이었다. 자꾸 딴 이야기로 갈려고 한다. 안 되겠다. 바로 들어간다. ‘똥’ 이야기다.


우리 집이야 농사지을 땅도 없었지만, 이웃 대부분은 농사를 지었다. 어렸었지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똥’ 갖고 이웃끼리 싸움이 난 거다. 똥을 훔쳤다는 거다. 자기 밭에 군데군데 구덩이를 파서, 거기에 똥을 부어 모아 놓는다. 큰 구덩이도 있고, 작은 구덩이도 있었다. 밭에 거름으로 사용하려는 거다. 그 똥을 누가 훔쳤다는 거다. 먹을 건 나누었어도, 똥은 나누지 않았던 시절이다.


독점에서 약 1년 살고, 모래마을로 이사했다. 모래마을은 주민 대개가 철거민이다. 마을 자체가 산 위에 대강 집을 짓는, 무허가 집이 대부분인 새로 생긴 마을이었다. 그 산은 땅을 조금만 파면 굵은 모래가 나왔다. 굵은 모래를 채로 걸러서 집을 지었다. 웬만하면 모래를 돈 주고 살 필요가 별로 없었다. 모래마을인 이유다.


주변에 논밭도 없었다. 농사짓는 주민도 없었다. 그들에겐 똥이 쓸모가 없었다. 가끔 산자락 빈터에 구덩이를 파서 똥을 모아 뒀던 집이 있었다. 산자락 빈터 아무 데나 먼저 차지한 사람이 밭으로 이용했다. 똥은 그 밭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똥 구덩이에 빠져서 난리 난 애들도 더러 있었다. 누군 발목까지, 누군 무릎까지. 겨울에 더 많았다. 윗부분이 살짝 얼고, 그 위를 눈이 덮여 있으면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 지금도 확인할 수 없지만, 사람이 가슴까지 똥통에 빠지면 죽는다고 한다. 똥독 때문에. 실제로 당시 개가 똥 구덩이에 빠져서 죽은 건 봤다.


하여, 대부분 주민이 똥 푸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서 변소를 비었다. 자기 집만의 변소가 있는 사람은 자기 돈으로, 그렇지 않고 ‘공중변소’를 사용하는 사람은, 식구 수대로 일정액의 돈을 갹출해서 변소 청소를 했다. 우리 집은 1978년까지 공중변소를 사용했다.


골목마다 지게를 지고서 ‘똥~퍼, 똥~퍼’하는 사람이 있었다. 환경이 삶의 양태를 바꿔 놓은 거다. 밭농사 짓는 사람에겐 ‘똥’이 곧 ‘돈’이었는데,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겐 ‘똥’이 곧 ‘똥’이 된 거다.


1979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다섯 번째 이사였다. 구월동에서 <월세-전세-자가(10만 원 구입)-자가-자가>의 순서였다. 오롯이 엄마의 고생 덕분이었다. 변소가 있는 첫 번째 집이었다. 무척 기뻤다. 변소에서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가끔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신혼부부와 겹칠 때도 있었지만.


이사 온 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때가 되면, 변소를 비어야 하는 거였다. 나름 굉장히 넓은 공간의 똥 뚯간이었는데, 어느새 변소 똥뚯간이 똥으로 가득 찼다. 매일매일 조금씩 계속해서 하는 일의 성과를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똥이란!


똥 푸는 아저씨에게 돈을 주고 변소 청소를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는 장사하고, 아버지는 편찮으셔 누워 계시고(그렇지 않았어도, 대한민국 대부분 사람이 주장하듯 아버지도 양반 집 장손인데 언감생심---), 형과 누나는 이미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똥 풀 때가 됐다. 큰 용기를 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 나는 뭣 하고 있는 건가. 한 푼이라도 도움이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옆집에서 똥지게와 똥바가지를 빌렸다. 한 바가지의 똥을 퍼서 양철 똥통에 담았다. 변소 똥 청소는 그렇게 시작됐다. 내게 이런 의미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몇 바가지씩 푸면 한 똥통이 차고, 두 똥통을 채우면 똥지게에 지고 집 앞, 길 건너 빈터에 가서 똥을 쏟아붓는 거다. 서너 번을 하면 변소 똥 청소가 끝을 보인다. 물을 붓고, 빗질하는 게 똥 ‘일’ 마무리다.



2. 똥 ‘이’.

-어떡하든지 돈을 벌어야겠다는 각오를 더 크게 불타오르게 했던 건 확실하다.


똥 이야기는 계속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다. 또다시 똥 풀 때가 됐다. 자주 있진 않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똥지게와 똥바가지를 빌리고, 똥을 퍼서, 똥지게에 지고 집을 나섰다. 하의는 교련복에 상의는 연노랑 줄무늬가 있는 반소매 티였다.


집 앞쪽으로는 경사가 있었고, 경사 끝쯤 버스가 다니는 비포장 큰 길이 가로질렀다. 길 너머가 빈터다. 집 대문을 나서서 방향을 말하면, 왼쪽이 인천시청(당시는 지금의 시청사가 없었음) 방향, 오른쪽이 문성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다) 방향이었다.


다시 똥이다. 똥이 잔뜩 든 똥지게를 지고 대문을 나섰다. 경사에 섰다.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삼삼오오 길 앞으로 문성여고 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아! 어쩌란 말인가. 모자도 쓰질 않았고, 옆에 매달린 똥통은 무게 때문에 좌우로 흔들리고 있고, 경사진 길에서 오랫동안 서서 기다릴 수도 없고, 경사가 져서 똥통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 학생들은 계속 오고---.


인생이 왜 이런가. 그냥 갈 수밖에. 고개를 푹 숙이고 똥지게를 지고, 여고생들이 지나는 길을 죄지은 사람처럼 통과했다. 빈터로 향했다. 왜 그리 지나가는 여고생들이 많은지, 왜 그리 빈터로 가는 길이 먼지, 왜 그리 똥통은 흔들리는지.


똥통을 내려놓고, 빈터에 쏟아부었다. 똥을 쏟아붓는 ‘나’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창피함과 분노가 동시에 몰려왔다. 특별히 누굴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다만, 어떡하든지 돈을 벌어야겠다는 각오를 더 크게 불타오르게 했던 건 확실하다. 누가? 똥 ‘이’.



3. 똥 ‘삼’.

-가슴 속에 이런 이야기 하나쯤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의 옷차림을. 나름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지금도 알 수 없다. 똥지게를 어깨에 진 내가,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여고생을 그때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지. 서로서로 학생들끼리 등하교 시간도 비슷했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마주치지 않으려 계산하면서 똥을 펐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착오가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다. 시험 때였는지, 학교에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토요일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한 건 있다. 똥이 나를 한 뼘은 키웠다. ‘돈을 벌어서 이렇게는 살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한 결정적인 순간이었으니.


당시는 대부분이 똥을 거름으로 사용한 밭에서 자란, 튼튼하고 ‘알’찬 채소를 먹고 살았다. 그러니 똥이 나를 키웠다는 말도 괜한 말은 아니리라. 기생충 ‘알’로 인해, 구충제를 많이 먹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도 똥 때문이었지만.


건강의 척도가 있다. ‘잘 먹고, 잘 누냐’는 거다. 배변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면 똥을 ‘누지’ 못한다. 똥을 ‘싼’다. 괄약근 조절도 되질 않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똥을 ‘누지’ 못하는 거다. 모두가 건강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똥을 ‘싸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난, 하루 한 번씩 잘 ‘눈다’.


똥 덕분에 배운다. 사람은 보통 때에는 똥을 멸시하고 천대한다. 똥을 피한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는 매우 중요하게 대접한다. 오랫동안 腸(장)에서 전혀 나오지 않으면, 독소로 인해 사람이 죽는다. 병원에서 몸속에 큰 수술했을 때, 똥을 얼마나 누었냐고 계속해서 확인하는 이유다. 다행히 항문에라도 걸쳐 있으면, 잘 모셔서 나오게 해야 한다. 어떻든지 또는 뭐든지 똥 같은 거라고, 무시해선 절대 안 된다. 특별히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든지.


똥에 배울 교훈은 또 있다. ‘겸손’이다. 그런 詩(시)도 있잖은가. 학문보다 항문을 잘 닦아야 한다는. 학문도 제대로 닦지 못한 사람이, 학문을 이용해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학벌이라는 가면을 쓰고, 옳지 않게 학문을 이용해서 돈과 지위와 권력을 누리는 거다. 거만하고 교만하다. 말도 함부로 쏟아낸다. 그들에겐 입에 튼튼한 괄약근이 필요하다.


항문을 통해 나오는 똥에 분명히 배워야 할 사람들이다. 먼저 나왔으면서도, 아니 먼저 나오면 나올수록, 잘난 체 전혀 하지 않고, 위세 부리지 않고, 스스로 주저하지 않고 맨 밑에 깔리는 그 ‘겸손함’이란! 님이여! 똥이여!


가슴 속에 이런 이야기 하나쯤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이렇게 똥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니, 속이 뻥 뚫린 듯하다. 시원하다. (가슴이다. 장이 아니다. 장은 언제나 시원했다). 언제 또 똥 이야기를 하랴. 그때 날 봤던 여고생들은 잘 있는지. 경, 순, 옥. 눈에 삼삼하다. 보고 싶다. 오해 마라. 사실 난, 당시 단 한 명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냥 재미 삼아 해보는, 똥 구덩이에 빠진 개소리다.


고등학교 삼학년 똥 풀 때, 삼삼오오 다녔던 여고생들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이렇게 똥 ‘삼’ 이야기도 접는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평생토록 똥을 잘 ‘누길’ 바라면서. 아, 똥 꿈은 돈 버는 꿈이라는 말도 있다. 똥 꿈도 꾸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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