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21살 때다. 40년 전이다. 서울 청계천 책 도매상에서 정가 1000원짜리 책은 600원에, 정가 500원짜리 책은 300원에 사다가 팔았다. 단행본이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 리어카 위에 펼쳐 두고.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어머니가 떡볶이와 부침개를 팔던 그 손수레다. 퇴근 시간 즈음부터는 리어카가 서점으로 변신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생 시절 이후인 거 같다. 서점을 운영하고 싶었다. ‘책도 보고, 돈도 벌고’. 어린 시절 꿈은 대통령이었다. 최소한 장관.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르지만.
드넓은 논과 밭을 밀어내고, 그 위에 5층짜리 아파트가 위풍당당 세워졌다. 난생처음 그 안에 들어가서 신세계를 체험(?)한 아파트다. 아버지가 학교 교장 선생님인 친구 덕분에. 부러움 천지였다. 아, 화장실이 집 안에 있다니!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으쌰랴 으쌰, 으쌰랴 으쌰),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으쌰랴 으쌰, 으쌰랴 으쌰)”는 구월동 주공 아파트다. 고등학교 2학년, 1979년 일이다.
소망했던 내 서점은 21살, 그 아파트 큰길 가, 동호탕 앞 상가 부근에서 이루어졌다. ‘동양 최대의 목욕탕’이라고 선전한 바로 그 목욕탕이다. 궁금했다. 동호탕 사장님은 그때 ‘동양’의 목욕탕을 다 가서 확인해보고, 목욕도 해보았었나? 어떻게 조사하셨나?! 나라에, 목욕탕 크기에 대한 자료가 다 있었나? 암튼. 온갖 종류의 책들이 많았다. (특기를 살려) 열거하면, (할까, 말까) 김수영 시집, 윤동주 시집, 박경리 장편소설, 김동리 소설집, 톨스토이 단편선, 탈무드, 세계 우수 단편 모음,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합 783권).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지면 분량 관계상, 열거하고야 말았다. 독자들은 짜증을 멈추시고,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당시, 팔았던 책들 783권의 책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았으니. 783권의 책 중, 하루에 보통 15권은 팔렸다. 하루 수익은 4,000원 정도였다. 책을 사러 가는 교통비와 카바이드 비용은 제하기 전이다. (이 글을 보시는 분 중, ‘어떻게 783권이었음을 아느냐?’고, 설마 따지는 분은 안 계시겠죠). 참고하기 바란다. 그때, 인천에서 제법 큰 동양목재소 일당이 5,000원이었다. 점심값 500원을 떼면, 4,500원이다. 다녀 봐서 안다.
해가 긴 여름에는, 리어카 위에 펼쳐놓은 책 ‘제목’이라도 보았다. 이따금 ‘속 내용’도 보았지만, 겨울에는 힘들었다. 카바이드 불빛으론 작은 글자가 보이지도 않았고, 추위 때문에 손도 얼었다. 그래도 ‘책을 보면서, 돈도 벌고’, 좋았다. 열심히 했다. 행인들이 많아진 퇴근 시간이면, 내 ‘외침’으로 동호탕 부근이 울렸다. 큰 목소리가 동호탕과 상가 그리고 아파트에 울려서 메아리로 돌아왔다. (나만 들었나?! 환청?) 과장, 아니다. 나, 목소리 정말 크다. 아는 사람 다 안다. 게다가 한 권이라도 더 팔고 싶은 간절한 ‘절규’였으니. 마구 소리 높여 저자와 책 제목을 외쳤다. 위에서 열거한 책들도 그중 하나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변명’이--- (어쩌구저쩌구), 루소의 ‘에밀’이--- (어쩌구저쩌구),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어쩌구저쩌구). 심오한 철학적 사상이 담긴, 여러분이 읽으면 많은 걸 깨닫게 될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있습니다. 니체, 진짜 엄청난 사람입니다. 니체는요, (어쩌구저쩌구)---와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였다. 리어카에 펼쳐진 책들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청년이라고 그랬는지, 학생이라고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청년(학생), 좀 가만히 있지!” 내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했다. 아니, 굳어졌다. 정말 찰나였다. 추운 날씨 때문만이 아니었다. 도둑질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아저씨가 한, 그 말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맘, 다 알고 있다. 그래도---’.
그 후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건 아저씨가 책을 사 주셨다는 거다. 사 주셨다, 책 2권을! 500원짜리인지, 1000원짜리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이후로 동호탕 앞에서 내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걸 다 아는 ‘박사’ 청년(학생)이, 책 내용을 ‘강의’하는 목소리가. 하지만, 매출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동안 괜히 목만 상했던 거다. 그건 다 동호탕 사장님의 과장된 광고 전략 영향 때문이었으리. 아니다. 잘 못 배운, 잘 못 적용한, 내 잘못이 분명하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직도 읽지 못했다. 아니, 내 실력으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때 생각하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얼굴도 살짝 붉어진다. 손이 가질 않는다. 읽으려다가도 금방 포기한다. 제법, ‘책 좀 봤다’라는 지금도!
21살, 내 삶의 한 조각이다. 생각하면 민망하다.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하다’라는 진리를 깨우쳐 주신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꾸뻑. 아저씨께서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지금은 책을 실컷 본답니다. 길거리가 아닌, 화장실이 안에 있는 제집 아파트에서. 서점은 아니지만, 어쩌면 더 기쁘게, 제 소망이 (제 기준으로는 충분히) 이루어진 겁니다. 대통령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도 대통령을 부러워하면 병이겠지요. 아저씨! 근데 이건 제 고질병인가요?! 자꾸만,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게 내려고 하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