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적’인 성격이 MEMBER Yuji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
우리 부부는 아들(이재0, 1991년생)과 딸(이신0, 1995년생), 두 자녀를 두었다. 부부간의 갈등은 웬만큼 있(었)음을 이미 밝혔다.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하면---. 다른 부부간의 갈등에 대해 일일이 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을 살펴보았을 때, 먼저 내 여섯 형제/자매 부부 중, 나를 제외한 다섯 부부를 살피면---.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하시죠. 좀 더 기다리시죠. 다음으로는 처가의 세 자매 부부 중, 제 아내를 제외한 두 부부를 거론한다면---. 이게 뭐야, ‘빨리 말해라’고, 말하고 싶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다음으로는 제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스물세 쌍의 부부를 살펴보면---.
잘못했습니다. 그만하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간절히 빕니다.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어! 확 집어 던지기 전에, 그만하고 너희 부부 간 갈등이 얼마나 많았음을 빨리 말해! 문맥적으로 예상하면, 네가 질질 끄는 거 보니까, 분명히 너희 부부는 엄청난 갈등이 ‘있었을 거’로 생각하셨죠. 그렇게 바란 건 물론 아니시겠지만. 그러나 어쩌죠!
확실히 밝힌다. 나는 우리 부부만큼 갈등 또는 싸움 횟수가 적은 부부를 알지 못한다. 진짜다. 근데, 지금은? 사소한 의견 대립은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 사소한 부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독자들이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좋아하실 만한 부부 갈등 또는 심각한 싸움의 내용은 들을 수 없을 거다. 그동안은 진짜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제가 왜 숨기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서론이 길었냐고요?! 무슨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러느냐고요?! 네, 확실히 말합니다. 갑자기 뜬금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교육’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교육’. 내 밥벌이는 거의 사교육과 관련 있다. 약 17년 동안 입시학원에서 원장으로서 강의하고, 운영했다. 그러기에 사교육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 이제야 알겠다. 사교육의 효능감을 말하려는구나! 괜히 말만 빙빙 돌리고, 이제야 네 본심을 알겠다.’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자녀들 사교육에 관해 의견이 대립 되어, 다투는 부부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부부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 중 하나다. 자녀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나. 정말 별별 일을 다 본다. 주변에서 많이 봤을 거다. 기러기 부부라나, 뭐라나. 가족끼리 생이별하는.
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중심을 잃고 헤매고 있다. 헤매고 있을 땐, 직설적으로 빨리 본론으로 가는 게 좋다. ‘사교육 문제로 부부끼리 다투지 마세요. 자녀들에게 사교육 강제하지 마세요’. 사교육 문제로 인해, 왜 부부끼리 다툼하시나요. 사교육 문제로 인해, 왜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시나요. 사교육 문제로 인해, 왜 자녀들과 원치 않는 갈등을 만드나요. 애들, 평생 갑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내 자녀 학업(또는 대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녀 스펙도 자랑하고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먼저 말한다. 학업(대학)부터. 아들과 딸, 두 명 모두 ‘글자 그대로’ 보통이다. 자세한 부분은 제 애들에 관한 사적인 내용이니, 자세히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해 주길.
핵심이다. 사교육을 (했다/안 했다)가 아니라, 강제로 (시켰냐/아니냐)를 말하는 거다. 제 애들, 사교육 적당히 했다. ‘적당히’가 뭐냐면, 애들이 원하는 만큼만 했다는 거다. 단 한 번도 강제로 시킨 적 없다. 아빠로선 여기서 멈출 수 없다. 하나라도 ‘자랑질’하고 싶다. 우리 애들, 착하다 (속고 있는 건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효성이 깊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교적’이다. 잘 어울린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이게 우리 애들이 지닌, 결정적 장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갖기 힘든 치명적인 스펙이다. 애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사람 사는 데 있어서 사교성이 중요한 건,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어차피 사람들끼리 어울리면서 사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됐다. 만족, 아주 만족한다. 애들에게 고맙다.
애들이 이렇게 ‘사교적’인 걸 자랑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길게 쓴 거다. 사교적인 특장점 능력배양은 사교육만으론 어림없다. 아니, 사교육은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경쟁하는 자와 그리고 비교하는 대상과 一合(일합)에 승부를 내는 엄청난 전쟁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시키는 사교육은 온 가족 모두에게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사교적’인 성격이 MEMBER Yuji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 및 사회 성공의 기본 SPECIFICATION에 관한 연구>. 이런 쪽으로 말이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런 걸 말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아니, 말할 수도 없다. 능력도 안 된다.
불리할 땐 도망, 바로 결론이다. 자녀들 학벌/스펙, 이런 거 가지고, 부부 간 갈등 말라. 이 정도 살아보니, 이 정도 살아서 주변을 살펴보니, 이 정도 살아서 직/간접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보니, ‘사교육’, 그거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교육’ 문제로 여럿 망가진다. 강제로 시키지 마라, 제발! 우리 애들, 그래서 지금 뭐 하면서, 살고 있냐고요? 아들은 ‘사회복지사’로 열심히 잘살고 있다. 딸은 자신이 좋아하는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 가족, 여러 면에서 나름 괜찮다.
대부분의 경제생활을 ‘사교육’과 관련하여, ‘먹고 살았고’, 지금도 간접적으로 ‘사교육’과 걸쳐져 있다. 그런데도 말하고 싶었기에 말한 거다. 나와 다른 가치관, 교육관을 가진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한다. 여러 면에서 조심스러워, 빙빙 돌려 말한 이유다. 다르더라도, 틀렸다고 하면서, 너무 욕하지 마시길. 우리 부부, 애들 사교육 문제로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우리 부부, 애들에게 여태까지 이런 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공부 좀 해!” 이거 진짜다. 애들도 인정한다. 다른 거로 부부싸움은 여러 번 했(하, 할 거)지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