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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야 Nov 14. 2024

불길한 예고

세상에는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수많은 정체불명의 병들이 발생한다. 그녀 또한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다.



“안녕하십니까. 11월 5일 수요일 아침 8시 뉴스입니다. 오늘 첫 소식은 28년 전 정체 모를 증후군에 걸린 여성이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에 대한 보도입니다.”


출근길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 각자의 핸드폰 불빛만이 수없이 반짝이는 인파 속 8시 뉴스가 흘러나온다. 손하는 사망이라는 단어에 맞춰 고개를 들어 강남 한복판에 있는 대형 LED 전광판을 바라봤다.


“28년 전, 3명의 여성이 정체 모를 증후군에 걸려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그중 한 명의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되어 정부와 의료기관이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이 증후군은 43세 여성이 걸린다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질병에 해당되는 점이 있는 분들은 가까운 의료기관에 찾아가 정확한 검진을 받아보길 바랍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 리포터의 모습이 나왔다.


“이곳은 해당 여성이 거주하던 집입니다. 여성의 집에는 해당 증후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기재한 종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명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이라고 불리는—이 질병의 첫 증상입니다. 하루 …”


“어, 바뀌었다."


때마침 바뀐 신호등을 발견하곤 남들과는 달리 사뿐한 걸음으로 회사를 향했다. 신호등을 모두 건너자 8도의 쌀쌀한 날씨에 걸쳐 입은 베이지색 두툼한 코트 주머니에서 지잉-하는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자 남편 도인으로부터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우리 윤손하 생일 축하하고 사랑해.”


남편의 문자를 받은 손하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띠여 있다. 고개를 숙여 다시금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뚝뚝. 빗방울이 떨어져 지면에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웨이드 로퍼 위 새빨간 액체가 두 방울 떨어져 묻었다.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손을 붙였다 떼자 묽은 피들이 검지 손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어제 무리를 좀 했나….”


업체 발탁에 필요한 RFP 작업에 요 며칠 밤샘 작업을 한 탓인지 평소에 흐르지 않던 코피가 흘러 브라운 코트와 로퍼가 얼룩져버렸다. 손하는 중소 마케팅 업체인 트렌드 리프트의 마케터 팀장을 맡은 업계 경력자이다. 팀장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던 이유는 업무 실력과 더불어, 그곳에서 일한 지 벌써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던 점도 한몫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제안요청서를 작성해 발표까지 하게 되었는데 대형 업체를 모두 제치고 손하의 업체가 선정되었다. 하고 있는 업무에는 꽤나 자신감도 있고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3명의 팀원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고, 모두 그녀를 잘 따랐다. 회사에 도착하자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대리 김지훈이 보였다.


“김 대리님 안녕하세요~!”

“아, 팀장님 오셨어요.”


김 대리는 모니터도 키지 않고 멍하니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빙그르 돌기만 했다.


“왜요? 무슨 고민 있어요?”

“아니요, 피곤해서요.”


손하의 물음에 그제야 의자를 멈췄다. 손하는 자신의 자리에 있는 물티슈 한 장을 뽑아 코트와 로퍼를 벅벅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김 대리는 다소 놀란 듯 보였다.


“피예요? 그거?”

“아, 네 갑자기 안 흘리던 코피가 아침에 터져가지고.”


머쓱한 듯 김 대리가 보이지 않도록 거울을 들어 코 주변에 묻은 피를 마저 닦은 후 자리에 앉았다.


회사의 통유리 입구에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누가 들어도 시끌벅적한 게 손하의 팀원들 소리임을 멀리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짤랑이는 얼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손하의 마케팅 팀 막내 한서윤이 출근 중임을 확신했다. 회사의 문이 열리자 사원증을 양옆으로 휘날리며 손하에게 달려오는 한사원을 제지한 건 이주임였다.


“어우, 우리 도희주임 아니었으면 한 사원 손에 든 커피 다 쏟을 뻔했네?”

“그러게요. 서윤이가 애는 참 밝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안에는 한 줌의 애정이 들어가 있었다.


“이 커피는 애피타이저고, 점심은 저희가 쏩니다!”

“사도 내가 사야지, 괜찮아.”


손하는 사양한다는 듯 손을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서윤은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에서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꺼내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손하에게 걸어갔다. 라테의 컵홀더를 잡은 손하의 손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왔다.


“어? 팀장님 검지에 이거 되게 반달 모양 같네요?”

“어떤 거?”

대뜸 반달 얘기를 하는 탓에 평소 신경 쓰지 않던 자신의 검지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영양부족으로 생기는—흰 반점이 오른 검지 손톱 뿌리 끝에 초승달 모양으로 크게 자리 잡아 있었다.


“어머 이런 게 언제 생겼대.”

“그러게요. 최근에 너무 힘드셨나 보다.”


대화가 끝나고 자연스레 아침에 본 뉴스로 화제가 돌아갔다. 인터넷 기사에 올라온 전문을 본 듯 해당 스포트라이트를 읽어 보였다.


“전 세계 단 3명,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 여성 자살... '마의 16세'와 충격적 유사성”

“그게 뭐야?”


손에 든 라테의 입구에 입 바람을 후후 불곤 한 모금 마신 뒤 물었다.


“아침에 뉴스에서 난리 났던데요? 여자 사망한 거.”

“아, 아까 봤던 그건가?”



아침에 전광판으로 본 아침 8시 뉴스 내용이 떠오른 손하는 두 손을 짝하고 부딪쳤다. 최근 흉흉한 사건들도 많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 뉴스에 많이 다뤄져—그냥 그중 하나라고 태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음에 관련하여 무던한 감각이라는 것은 있어선 안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찌들어 갔던 걸지도 모른다. 단순히 궁금증으로 서윤에게 여자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만 물었다.


“근데 그 여자분은 왜 사망한 거래?”


손하의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스럽다는 듯 물었다.


“뉴스 보셨던 거 아니에요?”

“그게….”


손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 자리에 앉아있는 지훈과 도희를 향해 뉴스에 대해 물었다.


“김 대리님, 이 주임님도 모르세요?”

“응, 나도 못 봤는데 눈이 그렇게 동그래질 정도로 심각한 일이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이야기하는 서윤이다.


“뭐야 저는 팀장님은 보신 줄 알았네.”

“갑자기 코피가 나는 바람에 뒤 내용은 잘 못 들었어.”

“코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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