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85세쯤 일입니다.
엄마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최근 들어 아버지가 음식을 삼키지 못하신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하고 약도 좀 받아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병원에 가던 날 밥이라도 몇 술 뜨고 가야 한다며 엄마는 밥상 앞에서 아버지와 씨름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걸 왜 못 삼켜요. 꿀꺽 삼켜 봐요. 어 허 참! 자, 꿀꺽해봐요” 하며 애를 태우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도 넘겨보려고 하셨지만 계속 입에서 흘러내릴 뿐이었죠.
아버지가 가끔 다니셨던 한 대학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뇌사진도 찍고 몇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한두 시간 뒤 의사에게 결과를 들으러 갔습니다.
“뇌사진을 보니 치매가 상당히 진행 중이네요. 진행을 늦추는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곳은 이상이 없습니다”하고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음식을 삼키지 못해서 기운이 너무 없으신 데...”하니 의사가 “예, 그냥 좋아하시는 음식 해드리며 드시게 하세요. 연세 드시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간혹 좋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무심한 답만 들었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요.
‘좋아하시는 거 많이 해 드리라’는 말이 내내 거슬렸습니다. 엄마와 전 쓸쓸히 돌아왔습니다. “사람은 곡기가 끊기면 안 되는데...” 오는 동안 엄마는 이 한마디뿐 이셨습니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는 좀 어떠시냐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엄마는 “내가 몸에 좋다는 건 다 섞어서 믹서로 갈아 죽을 만들어 드리고 있다. 억지로라도 드시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거 다 섞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며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해 드리면 어떡하느냐며 펄쩍 뛰었습니다. 물론 엄마는 들은 체도 안하셨습니다.
다음 날 본가로 가봤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아버지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혈색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지셨던 것입니다.
엄마 얘기가 한 끼 드시는데 1시간 30분은 걸린다고 하셨습니다. 티스푼으로 조금씩 떠서 한 입 넘기시면 또 한 입... 비록 흘리는 게 반이지만 이런 식으로 매끼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엄마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진짜 승부’를 준비하셨던 겁니다. 의사가 못하면 당신이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셨던 겁니다.
몇 달이 지나자 아버지는 스스로 식사를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맛나게, 양껏 드시지는 못했지만 혼자 식사를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후로 몇 년 동안 편찮으신 데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셨습니다. ‘승부’에서 엄마가 승리하신 겁니다.
엄마는 가끔 푸념하십니다. “네 아버지를 만나서 늘그막에 고생만 했다. 내 몸 움직이기도 힘든데 몇 년 동안 아버지 돌보다 이제 나마저 힘이 다 빠졌다”라고 말입니다.
사실 엄마도 몇 년 전부터 관절이 안 좋아 걷는 게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엄마의 푸념이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확신합니다. 예전으로 돌아가 한 끼에 2시간이 넘게 걸리더라도 아버지 식사를 떠 드렸을 거란 것을. 그리고 ‘봐라. 한 그릇을 몽땅 비우셨다’며 자랑스레 얘기했을 거란 것을.
병원의 처방도 받지 못한 아버지를, 그 후로 8년이란 시간을 단단히 지켜내신 우리 엄마는 어떤 대학병원의 의사보다 뛰어난, 이 세상 최고의 명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