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는 밤, 내가 걷고 있는 방향을 다시 물었다
빨간불 앞에서 멈춘 그날 이후,
내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달리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고,
멈춰 선 시간이 더 이상 낭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속도를 늦추자마자,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
그러나 이상할 만큼 선명한 질문이었다.
“너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니?”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왜냐니, 그냥 살아야 하니까.’
너무 당연해서 대답조차 필요 없는 물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버스를 기다릴 때도,
밤이 찾아와 방 안이 고요해질 때도
그 목소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냥이 아니라면, 너의 이유는 무엇이니?”
사실 나는 늘 이유를 만들며 살아왔다.
더 나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보다 나은 나”라는 말에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그게 모두의 목표이자,
당연한 삶의 방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질문 앞에서 문득 멈칫했다.
‘더 나은 나’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남들이 말하는 기준을 하나씩 꺼내놓고 보면,
그 어디에도 내 마음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마치 누군가 미리 짜놓은 대본 같았다.
나는 단지 그 대본을 충실히 따라가는
조연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의 무서운 점은,
한 번 듣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속도를 높이던 이유가,
애써 붙잡던 목표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선택이
모두 다시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정말 내 것인가.
남들이 옳다고 말했기 때문에 걸어온 길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 끝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답은 아직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질문은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마치 별빛처럼 어두운 밤을 비추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한 빛이었다.
그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어쩌면 언젠가,
이 길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 질문들이 버겁다.
도망치듯 바쁘게 움직이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확신이 있다.
이 조용한 물음들 속에,
내가 진짜 찾고 있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안다.
이 길의 끝에는 정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빨간불이 끝나고, 다시 초록불이 켜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 질문과 함께 걷는다.
조용하지만 집요한, 그러나 아주 진실한 질문.
“너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