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베이징
마지막 시간은 뜻밖에 다가온다. 언제까지나 살 것만 같았던 베이징 순의에서 마지막 아침을 일기로 시작했다. 하루는 길지만 일 년은 짧다. 일 년은 지루하지만 인생은 짧다. 얼마 전 아나운서 임성훈 씨가 유퀴즈에 나왔다. 무려 26년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진행했는데, 방송을 끝내고 뒤돌아보니 일장춘몽이었다고 고백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처럼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에도 일기를 썼고 아침을 먹었다. 이제 다시는 KMC(근무했던 회사)에 출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10일 전에 순의구에 있는 외국인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여권을 찾으러 갔다. 취업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전처럼 200위안을 지불하고 기다렸다. 담당자가 이전과 다르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더니 여권을 주며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도 생소한 일이라 모니터를 한참을 주시하고 어디엔가 긴장된 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1시간 후에 다시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도착했다. 규칙에 따라 순의파출소에 주숙등기를 하려고 하는 찰나 전화가 걸려왔다. 다시 돌아오라는 급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혈압이 오르고 얼굴이 상기되었다. 구석진 회의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공안 2명이 다가와 말했다.
당신은 15일 이내로 중국을 떠나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열심히 일했고, 중국 가난한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한 죄밖에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들은 내가 종교활동을 했고 그동안 활동한 자료가 있다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로만 들었던 강제추방이 내게도 닥쳐왔다.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 중국에 15년을 살았고, 갑자기 한국에 돌아가면 살 집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앞날을 계획해야 할지 전혀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뭐든지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연말이면 다음 해 계획을 세우고, 월말이면 다음 달 계획을 세우고, 저녁마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바인더에 꼼꼼히 정리해야 안심하고 자는 성격이었다. 아내는 의외로 담담하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딸래미는 언제 비행기표를 사느냐고 물었지만 모두에게 큰 충격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지난가을에 한국에 갔을 때 이런 상황이 내게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중국에서 추방된 여러 중년 남자들을 만났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겠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취업비자로 당당하게 한국기업에서 부장의 명함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름에도 공안이 와서 내가 일하는 현장을 파악했다. 나는 당당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짜노동이 아님을 증명했었다. 내가 막상 그런 상황이 되고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베이징 제2 공항터미널 출국장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마지막으로 앉았다. 지난 9월 2일에 이곳에 앉았을 때는 한국에 가서 공부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의욕이 충만하여 20대 젊은이처럼 흥분했었다. 그때는 다시 돌아올 기약이 있어서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두 달이 흐른 그날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KE853 Morning Calm으로 가방 두 개를 부쳤다. 15년 중국생활에서 남은 것은 가방 두 개뿐이었다. 손에 든 카페라떼처럼 복잡한 마음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는데, 그 감정은 무감각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