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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Apr 18. 2022

아 옛날이여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몸

 집 밖을 나와, 밤길을 거닐 때면, 습관처럼 카메라를 들고 가곤 한다.

카메라를 들인 이후 나의 취미인데, 이게 꽤나 좋다. '오늘 한 장 이상 건 저야지'라고 인스타에 올릴 피드 거리를 찾을 때도 있고, 그냥 들고만 다니다가 오는 경우도 많다.


 행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빛이 주어진 대로 길을 걸을 뿐. 이 동네에서 6년 가까이 살고 있기에, 사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은 대부분 섭렵한 상태다. 그러던 중, 집과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천호 공원을 찾게 되었다. 천호공원을 가면, 굉장히 기분 좋은 이유가 있다. 그곳을 가면 우레탄 바닥에 통통 튀기는 농구공 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나루 한강공원 쪽 농구대도 있지만, 외진 곳이라 보통 젊은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 천호공원을 찾는 거 같다. 그저.. 저렇게 슛을 던지고, 리바운드를 하고 농구공을 튀길 수 있는 몸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내 인생, 농구의 시작은 농구대잔치였다. 우리 형의 '녹화 미션' 중 상당수가 그 당시 고려대학교와 맞붙는 경기에 대한 오더였다. 그때 TV에서 플레이하던 선수들의 수준과 더불어, 꽉 들어찬 관중석에서, 슈퍼스타 부럽지 않은 함성소리를 들으며 선수들은 정말 멋진 경기들을 쏟아냈고, 학교 가는 길에 펼쳐진 스포츠 신문의 메인 기사도 농구 기사가 많이 올라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농구를 잘하고 싶었다. 농구를 잘하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을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고,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또래보다 조금 키가 더 크게 되었다. 키가 커지니 친구들과 할 때면 아무래도 유리한 점이 많았고, 자연스레 농구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농구에 푹 빠졌던 시기는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 아닐까 싶다. 집 앞에 중계 근린공원이 있었다. 그곳 가운데에는 농구대 두 개가 설치되어있었는데, 중계동은 그 당시 학령인구가 매우 많아서, 어딜 가나 청소년들로 붐비던 시기였다. 때문에 그곳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는데, 일명 '짜지기'라고 하던 룰은, 각자 원하는 팀을 구성해 와서, 이기면 계속하고, 지면 한번 쉬는 그러한 룰이었다. 그래서일까, 꽤나 치열하고 수준 높은 길거리 농구를 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기면 희열을 느꼈고, 지면 너무 분했다. 왜냐하면 1시간여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결국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기기 위해 더 많은 연습을 했고, 농구를 하며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간 적도 많았던 추억이 있다.


 시간은 흘러, 나는 취업 후 오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었고, 어느새 서른이 금세 넘었다. 일을 하고 와서도, 미력하나마 육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그러다 보니 내 개인 시간이 많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당시 농구하는 거 하나만이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원이었고, 우리 와이프도 내키지는 않지만 토요일마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걸 허락해 주곤 했었다. 

 어느 덥디 더운 한 여름 토요일, 그날도 체육관에 가서 농구를 하던 도중, 오른쪽 무릎이 심하게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대로 쓰러지고야 말았다. 팀원들도 걱정이 되었는지, 반드시 MRI를 찍어보라고 했다. 나는 결국 오른쪽 전방 십자인대 파열, 왼쪽 후방 십자인대 부분 파열의 진단을 받고, 나는 그 당시, '당분간 운동을 못하는 줄' 알았다.


 시간은 어느덧 그 사고 이후 6개월 여가 넘게 흘렀지만, 나는 그날의 사고 트라우마와 함께, 병원에서 간호하던 가족들을 생각해 쉬이 농구공을 잡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 집에 농구공과 농구화는 있긴 있어서, 혼자 슈팅 연습을 하러 나갈 때가 간혹 있지만, 많지 않은 경우다. 그럴 때 가끔 모르는 분께서 같이 경기 뛰자고 하면, 정중히 거절한다. '내 몸은 홀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호 공원에서 멍하니 사람들이 농구하는 것을 바라본다. 

'나도 한때는 사내 대회도 나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라는 옛날 생각을 해보며, 그때 잘했던 플레이를 되뇌기도 한다. 

'저기선 슛 셀렉션이 안 좋았네, 한번 참았으면 좋았을걸' 이라며 마음속으로 훈수를 두기도 한다.


 열심히 땀을 흘리는 저 들을 바라보며, 부럽다고 생각을 한다. 이제 나는 농구를 저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떤 누군가는, 지금의 내가 별생각 없이 이어가고 있는 결혼생활도, 육아도, 일도, 사진취미 같은 평범한 것들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점이다. 


 그저 현생에 치이고, 별 볼일 없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 환경마저도 다른 누군가에겐 '복에 겨운 환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내가 항상 해오던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만 깨닫고 곱씹게 되는 생각인 것 같다.


겨우 3:3... 그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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