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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10. 2022

어서 와, 대구는 두 번째지?

"실장님, 혹시 10월 8일 강변역 스케줄 가능하세요?"

"아, 대표님 그날 제 친구가 대구에서 결혼식을 해서요... 불가할 거 같습니다."


 친구 A의 결혼식이 10월 8일 대구에서 치러졌다.

1년 전부터 이미 잡혀있던 스케줄이라, 그날 사전에 많은 대표님들의 구애(?)를 받았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두 거절해 둔 상태였다. 


"어이, 박실장 님, 내일모레 조심해서 오그 레이"

"아... 갑자기 몸이 안 좋다. 코로나 걸린 거 같아... 코로나가 잠잠 해지 면볼까?"

"야이ㅋㅋㅋㅋ"


 본식 이틀 전, A와 잠깐 통화를 하였다. 우리의 주된 레퍼토리, '코로나' 핑계 드립이 전화로 이어졌다. 

뭐, 귀찮거나, 그냥 가기 싫을 때 저런 드립을 친다. 요새 사실 누가 코로나 걸렸다고 못 간다고 하나... 그런데 통화상으로 들은 에피소드로는, 신부분 친구가 월요일 갑자기 코로나에 걸리셨다며... 결혼식에 못 올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셨다더라... 우리 둘은 엄청 웃었다. 나는 확신했다. 그 친구는 그날 '그냥 가기 싫은 것' 일 거라고...

 이튿날이 지나 본식 당일, 10월 8일 아침부터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예매해둔 SRT를 타기 위해 수서역으로 향했고, 열차 번호와 자리를 확인한 후 탑승하였다. 


 사실 대구는, 예전에 후배 부친상 때문에 한번 내려가 본 적이 있다. 그때도 고속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가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날은 악명 높았던 내 과제 PM과 배석을 하는 바람에, 기차를 탄 건지 회의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던 순간들이었다. 오죽하면, 돌아오는 길에 PM이 잠깐 눈 붙인 틈을 타서, 내릴 때까지 나도 끝까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었겠는가...


 기차를 타고,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잠도 좀 자고 예전 생각도 나고 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어느새 기차는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정확한 식장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모바일 청첩장을 가지고 식장까지 가는 경로를 검색해보니, 버스 타고 30분을 들어간 다음, 걸어서 15분을 가야 도착하는 위치더라. 날이 더웠으면 내 성격상 입이 삐쭉 나오며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갔을 텐데, 날이 워낙 서늘하고 좋아서 기분 좋게 버스에서 하차하여 걸어갈 수가 있었다.

하늘이 거짓말처럼 예뻤던 그날의 동대구역이었다.
반짝 거리던 그날의 동대구역


 나는 서두에 대구에 대해 거의 문외한 수준으로 모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예전 인스타그램 짬바(?)가 있다 보니, 대구에서 유일하게 아는 바로 그곳, '수성못'에서 친구가 결혼한다는 것을 식장을 찾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하늘은 너무나도 맑고, 사람들은 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 내가 자주 봐오던 석촌호수처럼 큰 호수가 아닌, 간단히 둘레길을 따라 둘러보기 너무 좋게 잘 조성된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을 오면서, 지금까지도 연이 닿아있는 혜윰 작가님이 생각나기도 하였다. 이곳을 참 좋아하신다고 하셨었는데... (글 보고 계시면!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올립니다!)


 식장 도착하여 친구 A와 신부를 만났다. 둘 다 살짝 지쳐있는 모습. 아마 메이크업 샾 부터해서 이어진 긴장감이, 본식까지 팽팽한 고무줄처럼 유지가 될 것이다. 사실 나도 결혼을 해봐서 알지만, 이도 저도 필요 없고 그냥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대부분의 기혼 커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멋있다. 좋다."

"어, 그래 고맙다."

"이제 곧 끝난다... 좀만 더 버티면 돼"

"정신이 없다 정신이..."

친구의 본식 촬영을 해 주니, 이런 좋은 점도 있더라, A도 내가 있어 조금은 긴장을 덜한 거 같았고, 나도 조금 더 즐겁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메인작가님의 촬영을 마치는 소리와 함께 나의 보조 촬영도 함께 끝이 났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이지만, 원팀이 되어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을 서로 격려하며 자축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첫 대구 방문과 달리, 이번에 내가 느낀 대구는 좋은 느낌이었다. 비록 많이 걷긴 했지만 식장까지 약 15분 동안 수성못을 끼고 이어지는 동안 경험한 풍경과 분위기는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웨딩 스냅 할 줄도 모르는 나에게 자신의 식에서 좀 실력을 발휘해달라는 A의 큰 제안에 대해, 그간 이날을 꿈꾸며 실제 웨딩 스냅 경험을 통한 빌드업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도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에 정말 만족스럽다. 


"미안하다, 내가 연회장까지 찍어주려고 했는데, 경주 넘어가 봐야 할 거 같다잉"

"어 그래그래 잠깐만 (주섬주섬,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낸다) 자자, 이거 받아가라"

"에이, 마 일없다. 니 내한테 준기 을만데, 돼따 일없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준 성의에 감동했는지 A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나한테 주려했는데, 사실 서울에서 식사하면서 이미 수고료를 받은 상황이라, 정말 정중히 거절하고 마음만 가득 받아 식장을 빠져나왔다. 


 내가 직접 사진으로 담았지만, 앞으로도 본식 행진 때 보여준 여유로운 발걸음과 당당한 마음가짐, 언제나 잊지 말고 어떠한 난관이 다가와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앞으로의 두 사람의 긴 여행의 시작점에서, 조금이나마 좋은 추억을 선물할 수 있었던, 보람되고 뜻깊은 하루였다.

Welcome 유부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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