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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23. 2022

오랜만의 만남

 어제, 오랜만에 대학교 학군단 모임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회장으로 부터 단톡방에 알람이 계속 오고 있었다. 내용은 뭐, 누구누구 올 거냐, 몇 시에 뭐 먹을 거냐 이런 내용인데, 귀찮음에도 다수를 위해 희생해주는 총무회장이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나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귀찮음. 먹는 거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가족들과 여행을 가도, 맛집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별로 없다. 줄 서는 것도 귀찮고, 알아보는 것도 귀찮다. "여행지에 있는 음식점은 대부분 맛집"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나다... 귀찮고, 먹을 거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요번에는 코로나로 인해 약 3년 만에 모이는 자리였다.

게다가, 회비도 따박따박 내고 있는데, 이번에 이렇게라도 가서 좀 털어먹(?)어야겠다는 본전 생각이 더 났나 보다. 멤버는 항상 똑같다. 나오는 사람만 나오는 고착화된 모임이 된 지 이미 오래이다...


"나 좀 늦어"

"어어 그래"


 내가 모임에 나갈 때 정말 자주 하는 멘트다. 

모임에 나가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굉장히 어렵다. 무언가 불안하기도 하고, 내가 '총대' 맨다는 생각도 많이 들기 때문인 거 같다. 그래서 가급적 거의 마지막이나, 중간에 합류하는 걸 좋아한다. 그게 딱 10분에서 15분 늦게 가면 거의 들어맞는다.


"여 반가워,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여기 앉아"

 친구들은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양꼬치집에서 만났는데, 정말 오랜만에 가서 그런가 양꼬치에 칭다오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 허겁지겁, 두 세 꼬치 정도 주어 먹고 나니, 정신이 들면서 이야기에 합류할 수가 있었다. 

 


 나는 오늘 딱히 기대하고 나온 모임은 아니었다. 

그저 다들 어떻게 사나, 다들 잘 살겠지? 하는 정도의 작은 기대만 갖고 왔는데, 그렇지 않은 동기들도 꽤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이 한 두잔씩 돌고, 우리는 자연스레 활발한 성격의 A에 대해 물어봤었다.

"A 어떻게 지내냐?"

"말도 마라, 회사에서, 영업용으로 밀어내는 제품 구매했다가, 그걸로 대출 잘못받고"

"아이고..."

"그 이후에 손해 만회하겠다고 코인 들어갔다가... 개박살나고, 이혼했다"

"헉..."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투자 잘못한 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혼 이야기에 다소 감정이 무겁게 느껴졌다. 사실 A에게 많은 돈은 아니지만, 5만 원을 그냥 준 적이 있다. 빌려달라는 거야, 달라는 거야? (brunch.co.kr)

잘 되길 바랬는데, 택도 없었겠지... 그래도 뭐,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 싶었다... A의 근황을 알려준 친구 B에게, 정말 A가 잘되길 바라고, 나중에 모임에도 즐겁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달라고 말하였다.


"야, B 근데 너는 왜 모자를 쓰고 나왔냐 쇼미 나가게?"

"아.... 탈모가 왔다. 약은 먹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 이식 수술받을라고 에잇"

상전벽해였다. B는 대학생 때도 에너지가 가장 넘치던, 물론 지금도 근육질에 큰 몸을 관리하고 있는 사내중에 사내다. 이런 친구가, 머리가 털리다니... 남 걱정할 건 아니다. 

 나도 큰일이다. 에효, 다들 이렇게 나이 먹으면서 하나둘씩 잃어가는 것들이 생기고 있었다.


 B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대학생 때에는 솔직히 말도 섞기 싫었다.

나랑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한테 큰소리 잘 치고, 그래서 좀 무서운(?) 친구라는 생각이 강해서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전역하고도 몇 년간은 대학생 때 텐션을 유지하고 있어서, 여전히 말 한마디 거는 게 무섭다 느껴질 정도였는데,

결혼하고 처음으로 보게 된 이번 모임에서는 다른 친구들 말도 잘 들어주고, 눈빛 자체가 조금 겸손(?)해 졌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식사하고 입가심으로 들어간 커피숖에서도, 나랑도 말이 잘 통하는구나 느껴져서, 이번 모임의 최대 수확이라고 하면, 내게 있어, B의 재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게, 양꼬치집에서 소주랑 맥주를 기분 좋을 정도로 마시고, 입가심 겸 커피숖을 들어왔다. 대학생 시절부터 사회를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던 C는 여전했다.


"애는 일찍 나야 된다 해보니까..."

"왜?"

"나이 50 먹으면, 월세 받고, 골프 치러 다니고, 애들하고도 좋은 데 가고 해야지"


 나는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뚜드렸다. 나는 50 먹어도, 서울에 33평짜리 자가 하나에, 운 좋으면 그랜져나 싼타페? 정도 되는 차 한 대 보유하는 게 max치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벌면 저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대학생 시절부터 차 몰고 다니고, 지갑에 현금도 많이 들구다니던 C라서, 그렇겠지 싶었는데, 

또 말은 그렇게 해도, 예전같으면 독3사 차 타고와서 대리불러서라도 집에 갔을텐데,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왔다길래 이 녀석도 결혼하고는 조금 변했구나, 허세를 덜 부리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너무 자주 하루 안 보면 죽을 듯이 불안하던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다. 

입사하고 동기들하고 좋은 추억 만들고, 하던 때에는 그런 게 가능했었는데, 이제 하나둘 자기의 가정을 꾸리고, 현실에 적응해 가며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하며 그런 관계는 나에게는 지금 '하나도' 없다.

모두 loose coupled 된 관계 몇 개만이 유지가 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대학교 학군단 모임이다. 


 이런 결합도가 낮은 모임이 좋을 때가 있다.

만날 때마다 사람들의 정보가 업데이트가 된다. 하도 안 만나니까 누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 아이들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간다. 자주 만나면 이야기 소재도 고갈되고 하는데, 이럴 땐 좀 덜 친한 모임이 나은 거 같다. 언제 나가도 즐겁거든.


 세월이 지나긴 했나 보다. 영원히 피가 끓어 넘 칠 거 같았던 대학생 때 친구들도, 서서히 머리도 빠지고 하나 둘 이혼의 풍파를 겪는 친구들도 나오고, 예전에 부리던 허세도 서서히 사그라든다. 결국 세월이라는 무게 앞에,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비슷하게 수렴해가지 않을까... 물론 개인의 경제력의 차이들로 인해 삶은 다 다르겠지만, 신체적 에너지나 외형은 다들 비슷해져 가는 거 같다. 


 오랜만에,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오래오래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들 건강하게 있어 주길.

다들 잘 살아남자. 건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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