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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Oct 18. 2022

나도 드러눕고 싶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아직까지도 명대사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영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이 부하 수사관에게 이야기 해준 대사다. 이 한 줄에 정말 많은 삶의 경험이 축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은 아니고, 몇 개월 전부터, 우리 몇 명 안 되는 팀원들은 둘로 쪼개져 각각의 고객들을 모시며 적은 인원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즉, 정상적인 인력 운용이 불가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일을 해 나가기 위해 모두가 노력을 해오고 있는 상황. 나 또한, 귀한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철저히 나의 관리 Role을 해 나감과 동시에,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요건들을 많은 extra 시간을 할애하여 업무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래 들어, 고객사의 각 Part별로 Mission Critical 한 목표 달성을 위해,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는 상황에, 계속되는 추가 미션들이 들어오는 상황을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영향도가 큰 요구사항에 대해 업무 시작 요청 메일을 받고, '내 상사'에게 나름의 제안을 가지고 피드백을 부탁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는 평상시 '비업무' 이야기에는 그렇게 살갑더니, '업무 도움' 요청에는 퉁명스럽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시간 뺏기기 싫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아예 안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그리 살갑지 않았다. 내가 열이 받은 것은 '대안까지 고민해서 가져간' 내 노력 자체를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귀찮은 태도를 나에게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억장이 무너진다. 


 오늘 이런 경험을 한 뒤, 겉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분은 정말 나빴지만, 참아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퉁명스럽기는 해도, 피드백을 해주긴 해줬거든... 

 그 이후, 고객에게 다른 업무로 전화를 받았고, 거기서 오히려 큰 힘을 얻었다. 거의 모든 업무 이야기가 협의되었을 무렵,


"프로님, 괜찮아요?"

"아.. 어떤 거요?"

"지금처럼, 일이 프로님한테만 몰려서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은 안 하세요?"

"내년에도.. 결국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살아가야죠.."

"하, 내년에는 좀 더 나아져야 할 텐데요.."

"크게 기대 안 하게 되네요... 말씀은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오히려, 나를 생각해주는 건 내 직속 상사가 아니라, 나에게 일을 주는 고객인 이 상황이, 

어쩜 작년과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작년과 올해가 바뀐 건, 내 나이뿐인 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이다. 눈빛만 보아도 아는 것도 그뿐이고,

결국 사람은 말로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리더 또한, 그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하지만, 그 기대는 이미 나에겐 지워진 지 오래다.


 상사는 평가권을 쥐고 있다. 평가를 잘 주면 좋다. 마다하지 않는다. 그 평가 1번으로 내년 연봉과 별도 보너스가 주어지는 내입장에서는 주면 너무 감사한 일이다. 다만, 동료들도 같이 고생하는 마당에, 혼자만 잘났다고, 징징댈 수는 없다. 정말 억울하면 평가결과에 제소해서 결과를 따르면 된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리더는 "자신의 시간을 줄여주는" 고마운 존재들에게 언제나 감사하다는 말을 지나칠 정도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옛말에 순망치한이라는 말이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성어인데, 관리자는 '입술'들에게 특히나 더 애정을 쏟고, 업무 하는데 불편함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나와 다른 사람 간의 견해 차이일 뿐, 그 사람을 포함해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성격상, '못하겠어요'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서, 제안하고 협의하며 합의점을 도출하는데, 요새 같아서는 그냥 드러눕고만 싶다. 

과도하게 나에게 집중된 업무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 귀한 시간 아껴준다고 일 처리하고 회신할 때,

남들은 그걸 모르고 그저 당연한 줄 아는 그 자세가, 너무 얄밉다. 상사 건 동료건 간에. 


"저 못하겠어요"

"왜요?"

"그냥요... 하기 싫어서요"


 나도 이렇게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하나.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다른 사람이 하려나, 

맨날 나만 죽어라 매달라고, 협의하고 대안 찾고, 징글징글하다. 그리고 그 일들이 일어나는 과정을 뻔히 알면서, 고맙단 말 한마디 안 하는 동료들에게 내 귀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다.


깨져버린 내 마음, 내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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