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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Dec 20. 2022

보기 좋다.

"우리 손녀딸들, 오늘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 사줄게! 맘껏 골라"


 나는 그만 친아버지의 생일을 놓치고야 말았다. 다른 의도는 없었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아버지의 생일이 "음력"이라는 것. (요새 누가 음력을 쇠냐고...) 그렇다고 아버지께 양력으로 생일을 바꾸라고 말도 못 하는 것 아니겠나. 칠십 평생 살아오시면서, 음력이 더 편하다고도 많이 이야기하시던 분이신데, 슬프지만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오신날 이 더 많은 분인데... 여하튼 놓치고야 말았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전화와 함께 곧 손녀딸들과 찾아뵙겠다고 이야기드렸고, 3주가 지나서야 내가 나고 자란 노원 집으로 가볼 수가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아파트는 집 주변으로는 병원, 마트, 학교 등 없는 게 없어서 "걸어 나가기"에 너무 좋았지만, 내가 커서 보니, 아파트 단지 내에 주차공간이 너무 부족하여 주차전쟁이 일어나기 십상이었다. 간신히 아파트에 들어와 두어 바퀴 돌아 비어있는 주차공간 한자리를 발견하고, 주차한 뒤 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우리 어머니.


 잠깐 집에서 몸을 녹였을까? 사실 부모님 댁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잇감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 기준으로 외갓집, 즉 장모님 댁에는 아이들 친화적인 공간도 있고 놀잇감도 많지만, 우리 부모님 댁에는 어려서부터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너무 무료한 나머지 내가 마트에 장 보러 가자고 제안했고 어인 일이신지 아버지 어머니 모두 함께 집을 나와 마트로 나섰다.


 아파트에서 마트로 가는 좁은 길, 그 길을 지날 때 아버지와 단둘이 걸을 수밖에 없는 공간이 형성되었다. 

"아버지, 몸은 좀 괜찮으세요? 수술하신 데는요"

"괜찮다. 내년 봄에 핀 뽑는 수술 하라고 한다"

"그것도 산재 처리되는 거예요?"

"응 그렇다고 하더구나"

"일은 좀 어때요? 몸안 좋고 요새 날 추워서 공원 조성일 별로 못 나가시지 않으세요?"

"그래도 계속 요새 일을 받아서 나가고 있어."


올해 4월, 그간 일감을 받아오던 공공 근로 공원 사업 도중, 사고로 왼쪽 발에 수술을 하신 아버지셨다. 사실 나이도 있으시고, 후유증 같은 걸로 일을 더 이상 못하셔도 할 말이 없을 거 같았는데, 용케 일감을 받으셔서 일을 하시고 계신단다. 게다가 아들 걱정 안 시키려는 심산이신지, 본인이 계속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는 걸,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걸 어필하고 계셨다.


"네 엄마가 맨날 용돈을 이만 원 밖에 안 줘. 내가 맨날 술만 먹고 다니는 줄 아나 봐"

이 말은 내가 20년 전부터 듣던 말인데... 물론 그 당시 물가가 저렴해서 그때는 만원밖에 안 주셨다고 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 게, 그 당시에도 받은 돈에서 일정 금액을 "떼고" 어머님께 주신다고 하셨었다. 지금도 그대로 시겠지...


 마트에 들어가 지하 1층으로 우리 가족은 향했다. 그곳은 완구류가 가득한 코너였다.

아버지는 손녀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해주고 싶다며 마음껏 고르라고 하였다. 우리 딸들은 정말 착한 거 같다. 내가 어렸을 적에 '큰 외삼촌'이 우리 집에 오셔서 슈퍼마켓에 가면 "종화, 마음껏 골라"라는 말을 하셨고, 눈치 없이 나는 그때 정말 '마음껏'골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 어머니도 너무 부끄러워서 나를 꼬집은 적도 많았고, 형도 나에게 그만 좀 고르라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사실 그 당시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마음껏 과자를 사준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절대 멈추지 않았었다...


 우리 딸들은, 그래도 그렇지 않더라. 가격 태그도 살펴보고, 할아버지께 다 골랐다며 더 안 사주셔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걸보고, 그래도, 나보다는 경제적으로 결핍이 덜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나 어릴 적에는 이런 적 없었잖아? 마트에 와서 다 고르라고 한 적 없는데.."

"호호"


 어머니는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사실 우리 두 형제 키우느라 돈이 많이 드셨겠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어렸을 때에는 인터넷 강의 하나 시원시원하게 수강 못 시켜주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마도 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시려고 하신 느낌이다. 대학 등록금이 좀 비쌀까, 본인이 학교를 제대로 못 나왔다는 콤플렉스에, 자식들은 어떻게든 대학을 보내려고 노력하신 거 같다. 그 덕분에, 나는 사회 초년생에서부터 그나마 마이너스가 아닌, 제로에서 시작할 수가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어릴 적과 다르게, 손녀딸들에게 마트 Flex를 하는 우리 부모님을 보며, 세월이 많이 흘러, 부모님도 '여유'가 조금은 생기셨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나는 여유가 없다. 집을 한채 갖고는 있으나, 좀 더 넓은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 하는 형편이고, 차도 탈만 하지만 작고 낡았다. 기회가 되면 바꾸고 싶은 마음도 요새는 좀 드는 거 같다. 그래서일까? 부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 조금이나마 여유 있어 보이는 어머니 아버지를 보며, 현재 내가 지나고 있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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