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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an 07. 2023

연말스토리

흔한 회사원의 연말연초

#1 평가 Season


"올해는 좀 챙겨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실 올해는 한 게 없는데요.."

"작년에 못 챙겨줬으니까.. 작년에 받았어야 했는데"

"올해 그냥 숨만 쉬고 살았는데요... 내년에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연말이 되면, 일반 회사원들은 그다음 해 연봉 상승률과 직결되는 '개인 평가'를 받게 된다.

회사는 조직별로 목표를 세우고, 점점 드릴 다운되어 개개인별 평가를 마무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강한 동기부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 내 리더와의 대화 내용에서 처럼, 나는 올해는 평가결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해온 거라고는 그저 이루어진 것을 조금 더 개선하기 위해 늘 해오던 것들을 해왔을 뿐이다. 스스로 일을 벌린적도 없고, 일을 받은 적도 없어서 작년 여름, 중간 면담 때에도 같은 분께 '좋은 평가 기대하지 않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라'라고 먼저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작년에나 잘 주시죠. 작년엔 진짜 열심히 했는데.... 누구보다"

"알지, 회사일이라는 게 열심히 했을 때 잘 주고 그렇지 않을 때 안 주면 좋은데 타이밍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아내년에 더 열심히 해. 알았지?"


'내'가 노력을 많이 했다고 아무리 어필해도, "때"가 있다는 걸 마흔이 다되어가는 시점에 알았다. 그리고, 나보다 조직에는 더 뛰어나고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다.


"여보, 나 올해 평가 잘 받았어! 헤헤"

"어머, 축하해"

"와 우리 아빠 시험 잘 봤어?"

"응, 아빠 시험 70점 맞았어!"

"그게 잘 본 거야?"


'그래, 모를 때가 행복한 거야.'


#2 불행 중 다행


"메신저로 공지드립니다. 우리 부서의 베트남 GDC 기술인력 1명을 모집합니다. 비밀 보장해 드리니, 많관부"


 연말, 가족들과 여행을 가느라 메신저를 아예 off 시켜놨었는데, 부서 단체방에 그룹장님께서 Job Offer를 올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지원해보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오는 피로감과 무기력증이 그 큰 이유였었다.


 나는 비슷한 직무를 수행했었던 회사 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형님, 그룹장님이 베트남 GDC 기술인력 1명을 모집한다는데, 지원해 볼까요?"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강력 추천!"


'좋아, 한번 넣어볼까...?' 하며 그룹장님 얼굴을 메신저에서 두 번 클릭해서, 대화방을 열었다.

거기서 막 N 줄씩 치면, 여러 번 알람이 울려 귀찮아하실까 봐 '메모장'에다가 멘트를 정성스레 적고 있었다.


"그룹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일전에 공고하신 베트남 GDC 기술지원인력 건은 구인이 완료되었을까요?"

뒤에는 간단한 지원동기와 너무 막 매달리고 싶지는 않은데, '호기심'이 있다 정도로 멘트를 적고, ctrl+c, ctrl+v를 하고 enter를 날리려던 참이었다. 그때,


"자, 평가면담하자 잠깐 회의실로"

#1 평가 Season에서 기술한 대로, 고과권자가 생각지도 않게 좋은 평가를 준 것이었다. 이러면... 내가 도망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사실 평가를 잘 못 받았으면, 명분이라도 있어서 그룹장께 미리 적어둔 구직 스크립트 'enter'키를 날렸을 텐데 잘 줬다는데 내가 무슨 명분이 있겠는가 싶었다. 이 조직에서 나를 믿어준 만큼, 더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열려있던 메신저 창을, enter키가 아니라 'esc'키를 눌러 빠져나왔다. 아쉽지만 별수 있으랴...


"그런데 그 베트남 GDC 인력 구인건은 어떻게 되었데요?"

"오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더라 한 3명 넘게 지원했다던데?"

"그래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자리 주변에서 윗분들이 내가 지원하려고 했던 직무에 대한 경쟁률을 들을 수가 있었다. 

 사실 갈 거였으면, 아무도 손 안 드는 상황에서, "제가 가겠습니다"를 해줘야 그림이 좋을 텐데... 

"역시 자네, 훌륭해"라는 소리도 듣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경쟁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지원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내가 지원을 고민 중일 때 카톡을 보냈던 형으로부터 새해인사와 함께 메시지가 왔다.


"거기 지원했니?"

"아뇨 형... 저 그냥 말았어요, "

"그래 잘했어, 형이 알아보니까 올해 거기 개빡실거래"

"진짜요?"

"응... 지원 안 하길 잘했어"


 내 판단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 해당 업무에 지원 자체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 이후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이래저래 내가 속한 조직에 몸을 담을 수가 있게 되었다.


#3, 수고 많으셨습니다.


"죄송하지만, 5월 전까지 급격하게 화면을 수정하는 일은 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첫 만남에서 이렇게 디펜스를 치시는 거예요...?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요?"


 고객사 A부장님과의 첫 업무 회의는 최악이었다.

나는 내가 맡은 팀 내부의 사람들의 '역량'을 알지 못했고, 그 당시 온전히 '나'의 경험을 토대로 된다/안된다를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었으므로, 고객사에서 준 숙제에 대해 방어논리를 피며 회피해야만 했다.

 그게 A부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분은 아마 그 당시 나를 엄청 싫어하셨을 거다. 하긴...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 같아도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이럴 땐 경험상 시간이 약이다. 팀원들과 호흡이 맞고, 그리고 업무를 하나하나 장악해 가면서, 점점 가능/불가능의 개념이 확실히 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비스 오픈 그리고 반기별 리뉴얼 3번을 거치며, A부장과 업무를 하면 할수록, 나는 A부장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일을 트리거링 시키고, 뒤로 도망가는 법이 없었다. 본인이 이해한 것은 그 위에 상사에게 본인이 설명을 하는 부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IT 전공도 아닌 기획자셨지만, 나중에 이르러서는 나보다 더 IT 스러운 용어를 쓰시면서 발전하는 모습도 보여 주셨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자신의 '철학'이 있어서 그것을 토대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부분이었다. 비록 나는 '개발자' 편하자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Role을 갖는 조직의 리더라면, 그는 '유저'가 편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프로덕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분이셨다.

 그래서 문구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이 버튼이 왜 위치를 해야 하는지, 왜 이곳에 이런 팝업이 있어야 하는지를 항상 되물으시던 분이었다.


 귀찮지. 귀찮긴 했다. 뭐 저렇게까지 하나... 하지만 일에 진심이셨고, 사람에 진심이셨다.


 1월 3일, 일본 여행을 마치고 회사에 출근하여 메신저를 켰는데, 함께 있던 단톡방에서 A부장은 자신의 업무가 변경되었다며 인사를 하고 퇴장한 것을 그제야 읽게 되었다. 아.. 가셨구나.


 A부장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그간 보여주신 프로덕트에 대한 열정,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 가셔서도 제가 부장님께 도움이 될만한 일이면 뭐든 돕겠습니다. 건승하세요"


 A부장은 나 보고도 그간 고생이 많았고, 앞으로도 남은 사람 도와서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러고는 맡은 일이 바쁜지 더 이상의 메신저는 오지 않았다.

 


 이렇듯, 회사에 있으면 연말연초, 평가시즌과 더불어 조직이동이 잦은 시기라 조금은 들뜨기도 하고 낙담도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평가와 좋은 기회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안 좋은 평가와 안 좋은 기회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을 때는 안 좋을 때를 생각하고, 안 좋을 때는 그 반대를 생각하면 된다. 

언제나 좋을 수 없으니, 최악을 생각하면 좋고, 항상 안 좋지 않으니, 지금이 지하 3층에 와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기회를 만드는 건, 결국 본인 자신의 태도와 역량에 달렸으니, 지금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너무 개의치 말자. 


 아울러, 만나고 헤어지는 건 일상 다반사 이므로, 함께 있을 때 상대방에게 잘해주자. 

또 만났을 때, 분명 그가 나의 큰 힘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무운을 빌어 본다.

로또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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