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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an 14. 2023

자만이 부른 화

마음도, 생각도, '셀프 빨래방'이 필요하다.

"대표님.. 아 어쩌죠? 제가 지금 '청담'에 와있는데요..."

"음, 택시 타고 강서까지 얼마나 걸려요?"

"1시간이요..."

"그럼... 오셔도 의미 없을 거 같네요..."


 오늘, 제목처럼 나 스스로의 자만으로 인해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자그마치 '촬영 펑크'.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신께서 도우신 건지... 촬영 Role자체가 아직 "서브"다 보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었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웨딩스냅이었지만, 주말마다 많은 대표님들이 불러주시며 점차 일감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나 또한 토요일마다 '셔터질'을 통해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무엇보다 신랑신부님의 인생에 몇 없을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 일을 앞으로도 조금 더 길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평소 자주 구직하던 사이트인 SLR클럽의 중고거래-구인구직 게시판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구직희망 메일을 자주 보내오고 있어 왔다.


"신랑신부님의 일생일대의 가장 소중한 순간, 제가 함께 담아드리며 원하시고 필요하신 순간, 언제나 힘이 되어 드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보통의 내 메일 템플릿 마무리 멘트였다. 


 사실 정말 그랬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최초에는 카메라와 렌즈가 있으니, 한번 배워볼까? 하는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점점 이 업계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분명히 있었고, 많은 대표들과 신랑신부님들의 스냅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단 한 번의 스냅 기회도 쉬이 여기지 않던 나였다.


 그렇지만, 일을 거듭하면 할수록, '자만심'이 점차 생겨났다.

어느새부턴가 소위 '피드백'이 많은, 업체의 일감을 걸러서 하거나, 나의 집이랑 먼 곳위주로 배정하는 업체 또한 거른다던가, '단가'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업체도 함께 일하기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스스로의 결과물에 대한 자신감과, 시장이 나를 필요로 하는 Needs가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정 부분 이상 나에게 손해가 나는 스케줄은, 거르는 게 맞지만, 나는 그 당시, 내가 "잘 나가는 스냅작가"로 정말 오해하고 있었던 거 같다.


 결국, 작년 말에는 Regular로 일감을 받는 업체가 사실상 없어지게 되었고, 간혹 일감을 주는 대표님 1분 정도만 붙잡고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올해 성수기가 되면 분명 일감이 넘쳐 나에게까지 '낙수효과'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작년과 다르게 그냥 주어지는 일들만 소화하자고, 조금 "여유 있게 살자고" 스스로에게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지원메일 잘 봤고요, 혹시 업체소속이 뚜렷이 안되어있으면 함께 일할 수 있을까요?"


 요번 주 월요일이었다. 작년에 지원했던 어느 업체였는데, 하도 지원을 많이 했어서 어딘지 몰라 수신처 이메일을 물어보고, 내가 지원했던 메일내용도 살펴보았다. 뭐 특별한 건 없고, "서브를 넘어 메인까지 섭렵해보고 싶다"와 "나는 시간약속 잘 지킨다" 정도로 요약이 되었다..


 생면부지의 지원자였지만, 어떤 게 마음에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대표는 나에게 2월 3월 비어있는 시간을 물어봤고, 나는 주어진 스케줄 중, 토요일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이번주 토요일 오전 첫 타임, 구로에서 열리는 웨딩 스케줄을 부여받았다.

 나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일도 없었는데, 정말 잘됬다며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다음날.


"실장님, 혹시 그 첫 스케줄 마치고, 연달아 1타임 촬영 더 의뢰하려는데 괜찮으실까요?"

"네네 식장위치와 시간 좀 알려주시겠어요?"

"네, 더 채플 엣 웨스트고요, 14시예요"


 정말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네이버 지도에 "채플"만 쳤더니, 채플엣 청담이 바로 첫 번째 row에 표기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까지도, 채플엣 웨스트가 채플엣 청담인 줄 알았다..


"대표님, 첫 번째 타임 끝나고 채플엣 웨스트(내 머릿속엔 채플엣 청담)까지 가려면 택시 타고 가도 50분은 걸리는데 괜찮으세요"

"네, 일단 와주세요. 상황 봐서, 첫 타임 식 중간에 끊고 나오셔야 할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상황 봐서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첫 타임은 예정보다 늦어져서, 내가 생각했던 데드라인인 11시 50분을 3분 넘긴 시점이 되었다.

때마침 대표로부터, 카톡을 통해, 지금 아웃해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메인작가에게 양해구하고 카메라가방과 옷등을 주섬주섬 챙겨, 신랑신부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도망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때,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청담을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하철역까지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7호선 남구로 역에 도착했다.

 화장실이 너무나 급했지만, 더 늦어지면 곤란하므로 일단 참고 7호선을 타고 보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를 뚫고 드디어, '더 채플엣 웨스트(내 머릿속엔 끝까지 더 채플엣 청담)에 도착했다. 


"아 대표님, 저 도착했습니다. 몇 층이세요?"

"네 저는 8층입니다. 곧 뵙겠습니다"


 예식장에 들어와 14시 예식 TimeTable에, 내가 할당받은 신부님 성함을 찾아봤는데... 내가 배정받은 신부의 이름과 달랐다. 그때 뭔가 싸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단 14시 식이 열리는 3F으로 이동했다.


 신부대기실을 찾아가서 일단 주섬주섬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 몇 컷 찍고, 메인작가로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임 대표님 되시죠?"

"아... 아닌데요?"

 어...?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싶어서 일단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넣고, 옷을 챙겨서 부랴부랴 나왔다. 

나는 해당층에 데스크 직원분께 질문을 드렸다.


"여기 8층 가려면 어떻게 가야 돼요?"

"어.. 작가님 여기는 6층이 끝이에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겨울임에도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카톡을 열어, 주어진 스케줄표를 봤더니.. 더 채플엣 '웨스트'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도착한 곳은 '청담' 브랜치였던 것이다.


 망연자실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서둘러 대표께 전화를 걸었다.

"제가 더 채플엣 청담을 와버렸습니다."

"하... 여기 오시려면 얼마 걸려요? 이미 많이 지금도 늦었는데"

"네.. 1시간은 더 걸릴 거 같아요"

"음... 오셔도 큰 의미 없겠네요, 큰일이네.. 일단 스케줄 소화 못하니 집으로 돌아가시면 될 거 같아요"


 그렇게,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돌아오는 그 시간이 정말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서는 바로 샤워부터 했다. 식은땀과 보슬비가 합쳐져서 퀴퀴한 냄새가 몸에서 느껴졌다. 잊고 싶었다 샤워를 통해서라도 이 상황을..


 샤워를 마치고 책상 의자에 앉아 한동한 멍하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실수가 한 번도 없었기에, 결론 내어보면, 나는 "자만심"이 가득했던 것이다. 웨딩홀 장소를 리뷰하고 또 리뷰했어야 했는데... 정말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울러, 새로운 업체와 잘해보고 싶었다. 이 업체는 페이조건도 괜찮고, 메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 꽤 나름 규모 있는 업체였으므로, 오히려 나는 "나한테 왜 연락을 했지?" 하는 의아함도 갖고 있었다. 그런 업체에서 잘해보자고, 한 번도 호흡 맞춰보지 않은 초짜에게 하루에 두 건을 부여한 거였는데.. 나는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자책하면서 첫 타임 사진을 공유폴더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업체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실장님, 다행히 주변에 계시던 작가분 섭외해서, 펑크 안 나고 잘 끝났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그러시면 되죠, 앞으론 철저히 잘 체크해 주세요"

"네.. 첫 타임 예식 제가 괜찮으시면 페이를 안 받고자 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아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펑크 안 났고, 잘 끝났으니 페이정산은 해드릴 거예요."


 그렇게 생명동아줄과도 같은 대표님과의 전화가 끝났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지만, 결코 가볍지만 않았다. 스스로에게 자책하는 내 마음속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 회의장소에서 가장 비난을 받은 인물은 "자신이"였다. 노력이 가 이야기했다. 


"자신아, 너는 언제부턴가 자신이가 아니라 자만이 가 된 거 같아"

그랬다. 어느새부턴가 웨딩스냅을 하는 나에게,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이 점차 퍼져갔던 거 같다. 

그렇게 내부 회의를 마치고, 점차 정신도 평온해지는 거 같았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실수는 바뀌지 않았다.


 그 이후, 대표로부터 카톡이 한번 더왔다. 내가 첫 타임 결과물을 올렸다고 보고하자, 수고했다며 계좌번호를 물어보는 카톡이었다. 나는, '너무 죄송하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라고 마지막 멘트를 카톡에 남겼다.

 본업은 아니지만, 페이를 받는 프로 작가의 Role을 함에 있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 충격의 여파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앞으로는 다신 안 그래야지. 그렇게 다짐해 보며, 이렇게 스케줄을 내가 펑크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다음 스케줄들을 회수하지 않으셨다. 나는 이로 인해 대표님께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갚아나가며 결과물로 그 믿음에 반드시 보답해야 할 의무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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